[쿠키인터뷰] '0.0MHz' 정은지 "에이핑크, 나와 평생 붙어있을 이름"

'0.0MHz' 정은지 "에이핑크, 나와 평생 붙어있을 이름"

기사승인 2019-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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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지가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0.0MHz’(감독 유선동)를 통해 새로운 캐릭터 소희로 변신한 정은지. 이전 작품에서의 정 많고 흥겨운, 그리고 ‘캔디’형 정은지를 기대한 팬들에게는 생소한 모습일 것이다. 정은지가 맡은 캐릭터 소희는 작품 중반까지 대사가 거의 없고, 눈에 띄는 행동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동료 배우 언니오빠들이, 소희가 아무래도 눈빛만 쏘거나 가만히 넋을 잃는 장면이 많으니까 ‘소희 꿀이네!’라면서 농담하더라고요. 그런데 후반에는 엄청나게 고생도 하고 액션도 많아서, 다들 사과했어요.” ‘0.0MHz’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은지의 말이다. 

영화 속 정은지는 드물게 웃지 않는다. 그가 웃는 것은 예고편에서 나온 기괴한 표정을 포함해 몇 컷 되지 않는다. 정은지의 팬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지만, 막상 정은지 본인에게는 익숙한 얼굴이다. “저는 제 무표정이 낯설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게, 집에서 거울만 봐도 제 무표정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하하. 소희 연기는 좀 어렵긴 했어요. 아무래도 눈빛만 가지고 소희에게 잠재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게 참 어렵죠. 하지만 안 해본 걸 해본다는 느낌이 좋기도 했어요. 와, 내가 무표정한 연기로 뭘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장면마다 도전하는 기분이었죠.”

‘0.0MHz’는 정은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응답하라 1998’ ‘그 겨울, 바람이 분다’등으로 이미 브라운관에서는 익숙한 얼굴이니만큼 스크린 데뷔는 늦은 감이 있다. 정은지의 스크린 데뷔가 늦은 이유는 너무 바빠서다. 본업이 아이돌 그룹 멤버인지라, 일정상 민폐를 끼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에이핑크 멤버로, 솔로 가수로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0MHz’에 임한 이유는 앞에 열거했듯,자신이 여태까지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여서다.

요즘 공포 영화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 또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다. ‘0.0MHz’의 두 주연도 에이핑크 출신의 정은지와 인피니트 출신의 이성열이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공포영화로 데뷔하거나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에 관해 정은지는 “아무래도 공포영화가 학생을 위주로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로 학교를 배경으로 일이 벌어지거나 하는 만큼, 10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동시에 10대처럼 보이는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들이 필요하다는 것. 

“공포 장르에 출연하려면 표정 표현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표현력을 기르게 돼요. 무대 위에서 깜찍하거나 발랄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공포영화에서도 표정을 잘 쓰고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그리고 생각보다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들이 영화 데뷔 기회를 잡기가 힘들어요. 영화 촬영 기회가 주어진다는 거 자체가 영화 제작진과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들 양측에 윈윈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좋죠.”[쿠키인터뷰] '0.0MHz' 정은지

‘0.0MHz’ 개봉을 앞두고 정은지가 걱정한 것도, 주연배우 두 사람 모두 아이돌 그룹 출신이다 보니 관객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공포라는 장르영화에 아이돌 두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거 자체가 편견 가지기 정말 쉽거든요. 리딩을 하면서도 신경 정말 많이 썼던 거 같아요. 저와 성열오빠 모두 아이돌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 열심히 하는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의 말마따나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들에게 흔히 관객들은 ‘연기를 못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정은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에이핑크와 그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지만, 그는 아이돌 그룹과 상관없이 이미 다양한 작품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은지는 좀 다르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 명이 잘못하면 전체가 잘못한 것으로 느껴지는 경향이 크더라고요, 이 일은요. 제가 뭔가 잘못하면 ‘아이돌 출신은 역시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입지가 저 때문에 좁아질까봐 실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에요. 물론 스스로도 아쉬움이 남지 않게 작품에 임하고 싶기도 하죠.”

“저 또한 가끔은 오롯이 배우 정은지로서 인정받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제게 따라다니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는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관심을 못 받았을 거예요. 애초에 ‘응답하라 1998’로 관심을 받은 것도, ‘아이돌인데 연기 잘 하네?’라는 대중의 흥미가 시작이었거든요. 그러니 반대급부도 제가 감당해야죠. 다른 분들이 저와 묶이는 바람에 피해를 입지 않게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정은지가 에이핑크로 데뷔한지 어느덧 8년이 됐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혼자서 지레 겁먹는 일도 요즘 많고,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보니 에이핑크로서의 활동이 얼마나 남았는지 자연스레 셈하게 된다고. 앞으로의 정은지는 어떤 사람이 될까. 10년 후의 정은지에 관해 물어봤더니, 그는 “계속 저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는 한 연기와 음악은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꾸준히 오래오래 일하는 것이 목표라는 정은지는 “하지만 역시 에이핑크로 오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19세때 만나 동고동락한 제 소중한 친구들이자 제 정체성이에요. 제 20대의 거의 전부를 에이핑크로 살았잖아요. 아마 저와 평생 붙어있을 이름일 테니, 이왕이면 제 곁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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