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V 진단키트 등장에 ‘의료인 패싱’우려...병원 검진과 다른 점은?

생리대형 패드로 집에서 '간편 검진' 가능...경제성·검진 안정성은 글쎄

기사승인 2019-05-25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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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V 진단키트 등장에 ‘의료인 패싱’우려...병원 검진과 다른 점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자가진단키트가 편의점에 출시되자 의료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칫 검진 분야에서 ‘의료인 패싱(Passing)’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우려다.

티씨엠생명과학은 최근 자궁경부암의 원인 바이러스인 HPV의 자가진단키트 ‘가인패드’를 자사 온라인사이트와 편의점 GS25에 출시했다. 신형 의료기기를 의료기관이 아닌 편의점에서 처음 출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가인패드-병원 검진, 어떻게 다를까?

가인패드는 생리대형 패드를 4시간 정도 착용하는 방식으로 검체를 채취해 HPV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자가검진 키트다. 업체 측은 채취한 검체를 티씨엠생명과학의 DNA검진센터 보내면 3일내로 결과가 통보되며, 산부인과 검진 결과와 98% 이상 일치하는 정밀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간편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기존 산부인과의 자궁경부암 및 HPV검사에서는 의료진이 자궁경부 내진을 통해 세포(검체)를 채취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어렵거나 의사의 내진이 부담스러운 의료소비자에게 가인패드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다만, 경제성과 검진의 안정성 면에서는 다소 매력이 떨어진다. 국가건강검진에서 2년에 한 번씩 무료 자궁경부암 검진을 제공하기 때문. 이에 비해 가인패드 가격은 7만 원 후반 대다.

현행 국가건강검진에 포함된 자궁경부암 무료 검진은 떼어낸 자궁경부 세포의 변형여부를 검사하는 방식이다. 이때 세포변형이 발견될 경우 다시 떼어낸 세포에서 고위험군 HPV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HPV유전자(DNA) 검사로 넘어간다. 이 순서대로 검진이 이뤄지면 건강보험이 적용돼 2차 검진(DNA 검사)도 본인부담금 2만원 내외로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DNA검사 비용은 6~7만 원 정도로 알려진다.

업체 관계자는 “가인패드는 의료기관의 2차 검진에 해당하는 DNA 검사방식이다. 고위험군 인 16, 18, 21번을 포함한 35종의 HPV를 스크리닝 할 수 있다”며 “침습적으로 자궁경부 세포를 떼어내지 않고, 질분비물 안에 있는 자궁경부 탈락세포를 증폭시켜 검사하는 방식이 특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론상 남성도 가인패드에 소변이나 정액 등을 채취하면 HPV 감염 여부를 검사해볼 수 있다.

앞으로 ‘가인패드’와 같은 체외진단기기의 유통시장 진입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혁신의료기기 분야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체외진단검사분야 신의료기술평가를 사전평가에서 사후평가로 바꾸고, 체외진단기기의 시장진입 소요기간을 기존 390일에서 80일 이내로 대폭 단축하는 내용이 담긴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올해 4월에는 혁신의료기기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의료기기육성법’과 ‘체외진단기기법’을 제정, 내년 5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의료인 패싱'우려.검진 실수로 질병 발견 늦으면 누구 책임? 

의료인들은 검진 분야에서 ‘의료인 패싱’ 현상이 나타날 것을 걱정한다. 의료인을 직접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건강검진은 안전성과 정확성이 떨어지고, 잘못된 의료정보로 인한 건강염려증, 병원검진 거부 등 부작용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의약품, 의료기기 등의 일반 유통채널 판매 확대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직선제)은 “가인패드는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대한 검출을 목적으로 하는 검사인데 마치 자궁경부암 검진을 대체하는 것으로 알려지는 것은 여성들에게 잘못된 의료정보를 줄 수 있고 국가 자궁경부암 검진을 거부하여 초기 암을 놓칠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본질적으로 자궁경부에서 의사가 직접 채취하는 검사와 키트를 이용한 질 분비물 검사는 동일시 할 수 없다”며 “개인이 검체를 정확히 채취할 수 없는 검사방법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위음성의 결과 나와 질병 발견이 늦어질 경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며, 의료 행위는 반드시 의료기관에서 전문가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강조했다.

약사단체 관계자 또한 “진단기기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등과 마찬가지로 국민 건강에 관련된 제품들의 규제가 완화되고 일반 판매가 확대되는 경향이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기 판매업을 신고할 경우 편의점 등에서도 해당 의료기기 판매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자궁경부암이나 HPV감염이 걱정이 된다면 병원을 찾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병원을 꺼릴만한 어떤 사유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물리적 문제로 검진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에게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며 "환자 선택의 문제이나 무료 국가건강검진이 있고, 그 이전에 HPV 예방접종을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한편, 감염된 고위험군 HPV가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약 10년 이상 걸린다. 의료계는 일반적으로 2년 주기의 국가건강검진을 받으면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하기 전 단계에서 예방적 시술을 시행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HPV백신을 접종하면 고위험군 HPV를 9종까지 예방할 수 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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