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샤우팅] 병원 미터기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켜집니다

기사승인 2016-06-28 09: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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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대중교통이 끊기는 늦은 시각, 사람들은 ‘야간 할증’을 의식하며 택시를 잡는다. 자정을 몇 분 남기고 ‘야간 할증’이 적용되지 않은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리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야간 할증’이 붙는 곳은 택시 이외에도 동네 의원, 치과의원, 한의원, 약국 등 다양하다. 그러나 ‘할증 시간대’가 다르고, ‘할증 적용기준’이 달라서 혼란스러울 때도 많고, 때로는 할증료를 내고도 속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6시 1분’, 돈 더 내야 하나요?

‘서울시 환자권리옴부즈만’에서 운영 중인 ‘환자고충 상담 콜센터’에서 상담한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환자는 감기 증상이 있어 퇴근 후 직장 근처의 한 내과의원을 찾았다. 도착한 시각은 5시 50분이었고, 잠시 뒤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나온 시각은 ‘6시 1분’이었다. 그런데 처방전과 함께 진료비 영수증을 받아 본 환자는 깜짝 놀랐다. 평소보다 진찰료가 더 나왔기 때문이다.

환자가 접수대에 앉아 있던 간호조무사에게 “왜 진료비가 평소보다 비싸냐?”고 묻자 “6시가 넘어 야간 할증료가 붙은 것이다.”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하지만 불과 1분 차이로 환자는 야간 할증료를 더 내야한다는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진찰료·조제료 야간·토요일·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할증제도’란 평일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 59분 59초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은 종일에 걸쳐 동네 의원, 치과의원, 한의원에서는 진찰료의 30%를, 약국은 조제료의 30%를 가산해 환자에게 청구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제는 의원과 약국의 영업시간을 최대한 연장하도록 권장하는 차원에서 시행되었다. 주변 의원과 약국이 문을 닫는 시간에 경증질환 환자들이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로 인한 발행하는 불필요한 응급실 인력소모, 응급환자 진료지체, 경증질환 환자의 의료비 과다지출 등을 막기 위함이다.

실제로 2011년 ‘국가응급환자진료정보망’(NEDIS)에서 파악한 142개 응급의료센터의 총 응급실 이용자 442만9,353명 중 절반이 넘는 230만9,677명은 응급실 재실시간이 2시간 미만에 불과했다. 대부분 간단한 처치를 받은 후 돌아간 경증질환 환자들이다.

◇보건복지부, “적용기준은 최대한 환자에게 유리하도록”

위 ‘환자고충 상담 콜센터’ 상담 사례의 경우 환자가 내원한 시각이 오후 5시 50분이고, 진료실 문을 나선 시각이 오후 6시 1분이다. 진찰료 야간 할증의 적용기준이 ‘내원 시점’인지 ‘진료개시 시점’인지에 따라 환자의 부담 금액이 변동하기 때문에 이 기준이 모호하면 환자들은 불만을 제기하기 쉽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합리적인 적용기준을 이미 마련해 놓았다. 이에 근거하면 위 상담사례는 명백하게 내과의원에서 진찰료 야간 할증기준을 잘못 적용한 경우다.

보건복지부 고시 제2006-9호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과 심사지침”을 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59분 59초 사이에는 ‘환자가 의료기관에 도착한 시각’을 시준으로 진찰료 야간 할증료가 가산된다. 반대로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 59분 59초 사이에는 ‘담당의사가 진료를 개시한 시각’을 기준으로 적용한다.

주·야간의 적용기준이 달라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 의원과 약국을 이용하는 환자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기준이다. 이 적용기준에 의하면 환자가 오후 6시 전에 도착했으나 진료의사의 부재 또는 대기시간의 지연 등으로 진료 개시가 늦어진 경우에도 진찰료 야간 할증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에게 불이익이 없다. 또한 단순히 진료를 빨리 받을 목적으로 오전 9시 이전에 내원하여 접수만 하고 기다리다가 9시 이후에 진료를 받는 경우에도 진찰료 야간할증은 적용되지 않는다.

◇환자들은 ‘불만’, 의원들은 “별 도움 안 돼”

일부 환자들은 진찰료 야간 할증 적용기준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의원 이용에까지 할증제도가 있다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직장인들이 동네 의원이나 약국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퇴근 후인 오후 6시부터 8시 사이이기 때문에 야간 할증료를 내지 않고 동네 의원과 약국을 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실상 의료비 자체가 오른 거나 다름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안기종의 환자샤우팅] 병원 미터기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켜집니다

야간·심야까지 운영하는 동네 의원이나 약국이 주변에 많으면 이득을 보는 것은 환자들이다. 동네 의원 진료 시 야간 할증료는 기껏해야 3~4천원 안팎이지만 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면 의료비가 최소 10만 원 이상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동네 의원이나 약국을 주변에서 만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의사나 약사들도 고충이 상당하다. 의사나 약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진료나 조제를 하면 체력이 떨어진다. 저녁 즈음 되어서는 집중력이 부족해 의료서비스나 조제서비스의 질도 떨어진다.

특히, 진료시간 막바지에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퇴근 시간이 불규칙해진다는 점도 의사나 약사들의 애로사항이다. 이와 같이 직장인들은 흔히 말하는 ‘칼퇴근’을 할 때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지만 의사나 약사는 ‘칼퇴근’을 하려고 하면 환자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환자들의 수가 비교적 많은 내과,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등은 진료 종료시간 30분 가량 남겨 놓은 시점에도 5~6명 이상의 환자들이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린다. 그러다 보니 오후 6시 정각에 퇴근하려는 의원의 경우 환자와 의사간에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오후 5시 40분 정도에 내원한 환자가 접수를 하려고 하면, 접수처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많아 더 이상의 접수를 받지 않겠다. 우리도 곧 퇴근시간이다.”라며 접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진료시간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몸까지 아픈 상황에서 진료까지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큰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진찰료·조제료 야간·토요일·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할증제도’가 도입된 이유가 “진찰료와 조제료의 30%를 할증료로 의원과 약국에 지불하고 반대급부로 야간이나 심야에서도 환자들이 병원 응급실 비용보다 저렴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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