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김형준 스폰서 의혹, 정의 팔아먹는 ‘엘리트’들의 초라한 맨 얼굴

기사승인 2016-09-07 11: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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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영화 같은 현실일까요, 현실 같은 영화일까요. 요즘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의 ‘숨겨주기’ 내지는 ‘나눠먹기’의 행태를 보면 으레 권력 부조리에 관한 스펙타클 판타지를 다룬 한 영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 이야깁니다. 여기에서 ‘판타지’란 표현을 쓴 이유는 영화에서 다룬 내용들이 흡사 공상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내부자들’에서는 사회의 유력 인사들이 학연·지연에 기대어 나눠먹고, 돌려막고, 숨겨주는 네트워크에 대해 진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돈, 권력, 성욕 앞에 선 그들의 태도는 매우 원초적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소위 ‘배웠다’는 이들이지만, 지켜야할 존엄한 가치에 대한 인식수준은 미개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건 좀 현실과 동떨어진 오버 아냐?”란 생각마저 들죠.

그러나 지상에서 우후죽순 들춰지는 사건사고는 “설마 그러겠어”란 희망어린 평가를 외려 판타지로 만듭니다.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양심을 돈과 바꿔먹는 유력 인사들의 사건이 그야말로 수도 없이 터지고 있습니다. 개돼지는 몰랐던 엘리트들의 계산법은 생각 이상으로 잔학합니다.

법무부는 오늘(7일) 고교 동창 스폰서 의혹을 받던 김형준 부장검사(46·사법연수원 25기)에 대해 직무집행정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두 달간 김 검사는 업무를 보지 않고 대검 감찰본부(본부장 정병하)의 감찰을 받게 됩니다. 법무부는 앞서 “감찰 대상인 검사가 공공기관에 파견돼있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김 검사를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징계성 전보 발령을 내렸습니다.

부장검사라면 어떤 사건에 관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위입니다. 당연히 공명정대한 해석과 판단을 요하는 위치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는 이가 특정 인물에게 내려질 처벌을 부정하게 무마하려 했습니다. 바로 고등학교 동창인 김모씨(46)의 65억원대 사기·횡령 사건에 관한 비위입니다.

김 검사의 친구 김씨는 회사 돈 15억원을 횡령한 데 이어 거래업체를 상대로 50억원대 사기까지 벌여 지난 4월 고소장이 접수됐고, 6일 구속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씨는 “김 검사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주고 술 접대를 해줬다”고 말했죠.

사건이 불거지자 김 검사는 “압색(압수수색)할지 모르니 집 사무실 불필요한 메모 등 있는지 점검해서 조치해” “인스타그램도 메모리에는 남아 복원될 수 있다고 하니 한번만 더 휴대폰도 제발 바꿔주라” 등의 메시지를 보내 어떻게든 비위 의혹을 덮어보려 애씁니다. 또 수사 검사들을 만나 부정청탁을 하는 등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하죠.

[친절한 쿡기자] 김형준 스폰서 의혹, 정의 팔아먹는 ‘엘리트’들의 초라한 맨 얼굴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 

민주사회에서 이 간단명료한 원칙이 지켜지는 건 꽤 중요한 일입니다. 이는 제1전제와도 같습니다. 이 전제가 부정되면 이후 가지를 치는 모든 사회적 가치 또한 무의미해집니다. 때문에 이 원칙이 단지 개인의 욕심에 의해 부정당한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더구나 원칙을 지켜야 할 '수호자'격인 이들이 부정의 선봉장에 선 건 전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제기됩니다.

엘리트들의 부정한 네트워크의 핵심 허브역할을 판·검사가 한 사실이 밝혀지자 사회적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의의 상징’으로 그간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됐던 이들이 이제는 ‘한 건 해먹는’ 부정한 권력처럼 비춰지게 됐습니다. 얼마 전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에 연루돼 기소된 홍만표 변호사는 검사장 출신이었습니다. 지난 2일 김수천 부장판사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죠.

진경준 검사장은 넥슨 김정주 대표로부터 주식 취득 자금 4억2500만원을 무상으로 받아 넥슨 비상장 주식 1만주를 매입하며 120억 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처남업체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청소용역을 수주받도록 도왔죠. 그 과정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이 개입하며 서로 뒤 봐주고 덮어주는 ‘Win-Win’관계가 성립됐습니다.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이 법무부와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징계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판·검사 56명(검사 46명·판사 10명)이 각종 비위로 징계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금품·향응수수로 징계를 받은 판·검사가 13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들 중 해임 처분을 받은 이는 고작 2명에 불과했습니다.

총을 다룰 줄 모르는 아이에게 총을 쥐어줄 수는 없듯이, 사회의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들에게 법봉을 맡길 순 없는 노릇입니다. ‘엘리트’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 또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뛰어난 능력’과 ‘지도적 위치’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깊이 고찰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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