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온 국민 ‘김영란법’ 머리 싸매는데…여의도는 ‘무풍지대’

기사승인 2016-09-13 14: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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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온 국민 ‘김영란법’ 머리 싸매는데…여의도는 ‘무풍지대’[쿠키뉴스=정진용 기자] “학생이 주는 500원짜리 초콜릿 하나도 불법이라던데, 아이들이 직접 만든 열쇠고리는 받아도 되는 걸까요?” 서울 한 사립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임모(27·여)씨의 고민거리입니다.

오는 28일 시행되는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앞두고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공직자 중의 공직자’ 국회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모양새입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사, 사립학교 교직원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처벌토록 하는 법입니다. 이에 따라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자에게 3만원이 넘는 음식 대접, 5만원이 넘는 선물이나 10만원이 넘는 경조사비를 받을 경우 과태료를 받게 됩니다.

‘김영란법’은 직접 대상자만 약 224만명, 대상자의 배우자까지 합하면 약 400만명에 이르는 광범위한 감시망입니다. 그러나 적용대상과 처벌 기준이 모호해 골치가 아프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각 정부 기관에서는 ‘김영란법’에 대한 공부가 한창입니다. 또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나 법률사무소에는 적용 기준에 대한 문의가 쇄도한다고 합니다. 귄익위가 내놓은 200여쪽에 달하는 매뉴얼로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죠. 

법 시행을 십여 일 앞두고 국민 사이엔 ‘나도 모르게’ 범법자가 될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민족 최대 명절 추석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추석 선물 물량이 본격적으로 몰린 지난 5일 하루에만 배송 물량이 무려 195만 상자가 접수됐습니다. 우체국 택배 사상 하루 치 물량 최고치를 경신한 수치죠. 그 배경엔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저가 상품을 여러 곳으로 보내다 보니 물량이 늘어났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자가 선물하는 열쇠고리 하나에도 시름이 깊은 교사들과 달리 ‘김영란법 무풍지대’에 속한 곳이 있습니다. .

바로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 의원회관입니다. 이곳은 매년 명절 때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 상자들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번 추석에는 택배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기우’에 그쳤습니다. 택배 기사들은 ‘00 의원’ 앞으로 배달된 상자들을 수레로 옮기며 분주한 모습입니다. 선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 없는 복도도 예년 그대로입니다.

물론 “선물을 받지 않겠다”며 먼저 모범을 보인 국회의원들도 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추석부터 명절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고 밝혔죠. 같은 당 이정현 대표도 전직 대통령과 당 소속 전직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들에게 선물을 보내던 관례 대신, 편지로 갈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노(No) 선물’ 선언으로 이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점 없는 국회의 모습에 이들의 선언은 ‘생색내기용’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애초 ‘김영란법’은 ‘국회의원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라는 예외조항을 만들어 특혜 시비가 있었습니다. 국민의 눈에 국회의원이 마치 특권계급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대통령의 추석 선물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달 초 각계 주요인사와 국가유공자 등에게 경북 경산 대추, 경기 여주 햅쌀, 전남 장흥 육포 등의 추석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5만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선물을 공직자에게 주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한차례 갑론을박이 오갔습니다. 정부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에 해당한다”며 다소 애매한 해명을 내놨습니다.

과연 ‘김영란법’이 애초 취지대로 청탁과 뇌물을 걷어낸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일반 국민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고무줄 법이 될까요. 정치인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한, 국회의 명절 풍경은 달라지기 어려워 보입니다.

jjy4791@kukinews.com

사진=박효상·박태현 기자 tina@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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