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끝내 떠난 백남기씨, 한 마디 사과에 인색한 그들

기사승인 2016-09-26 14: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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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끝내 떠난 백남기씨, 한 마디 사과에 인색한 그들[쿠키뉴스=정진용 기자] 백남기(69) 농민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끝내 영면했습니다. 이날은 백씨가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지 317일 만이었습니다. 또 고인의 칠순 생일이 하루 지난날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유가족들을 향한 사과나 위로는 커녕 부검을 하겠다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전남 보성군에서 농사를 짓던 평범한 농민이 어째서 이런 일을 당했을까요.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아침을 먹고 상경해 민중총궐기 집회에 합류했습니다. 그의 참석 이유는 꽤 명료합니다. 쌀 한 가마니 수매 가격을 2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매 가격은 13만6000원 수준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일부 시위대는 밧줄로 경찰버스로 만든 차벽을 잡아당겼고 백씨도 경찰 버스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경찰의 살수차는 경고방송이나 예비 분사 없이 그를 향해 고압 물대포를 직사했습니다. 가슴 아래를 쏘아야 한다는 지침을 어긴 채 물대포는 백씨의 머리를 정조준했죠. 그는 넘어지며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물대포는 동료들이 쓰러진 백씨를 구하는 순간에도, 심지어 그를 태운 응급차가 병원으로 가는 중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백씨를 쓰러뜨린 경찰의 물대포는 살인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경찰청이 지난 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위원들을 상대로 비공개 물대포 위력을 시연했을 당시 표적은 3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예순아홉 살의 노인을 사망케 한 국가는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습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지난 12일 ‘백남기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사과를 거부했습니다. 강 전 청장은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는 대단히 적절치 않다”며 재차 사과할 듯이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새누리당도 “불법시위가 없었다면 물대포도 없고 과격한 행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찰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했죠.

검찰은 백씨의 유가족이 강 전 청장을 비롯, 7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지만 수사는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강 전 총장과 집권여당의 발언, 그리고 당국의 무딘 대처를 보면 ‘불법 시위에 참여한 국민은 진압 과정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강압적 메시지가 으레 떠오릅니다. 작금의 상황이 협박으로 보이는 것은 과한 해석일까요.

이뿐만 아닙니다. 경찰은 뇌출혈·두개골절 등의 사인이 아닐 수도 있다며 강제 부검까지 실시하려 했습니다. 이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지난 25일 의견서를 내고 “백남기 농민의 발병 원인은 경찰 살수차의 수압으로 가해진 외상으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과 외상성 두개골절 때문”이라며 “이처럼 발병 원인이 명백한 환자에게서 부검을 운운하는 것은 발병 원인을 환자의 기저질환으로 몰아가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식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고 밝혔죠. 결국 경찰의 압수영장은 26일 새벽 기각됐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전날 SNS를 통해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죽음인데도 대통령, 경찰청장, 누구의 사과도 없었다”며 “그분의 죽음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고 말했습니다.

벌써 수백 명이 넘는 시민들이 빈소를 찾아 경찰 병력 투입에 대비해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이날 밤 7시에는 촛불 문화제도 예정돼 있습니다. 백씨는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국가로부터 사과를 끌어 내는 일은 남은 시민의 몫이 아닐까요.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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