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박근혜 내각 개편을 ‘읍참마속’에 빗댄 발칙함은 어디에서 나왔나

기사승인 2016-11-02 16: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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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지지율이 한 자리로 떨어진 박근혜 정권이 내각 개편을 단행한 것을 놓고 ‘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 적용을 위해 사사로운 정을 포기한다’는 의미의 ‘읍참마속(泣斬馬謖)’에 빗댄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일부의’ 평가이지만 그 표현이 너무도 발칙한 나머지 불붙은 민심에 기름을 붓는 모양샙니다.

아울러 ‘친노계 인사’로 잘 알려진 김병준 국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정책학부 교수가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로 내정됐습니다. ‘노(盧)’와 ‘박(朴)’은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입니다만, 어쨌든 ‘박’ 정권은 비장의 카드로 ‘노’를 택했습니다. 파국으로 치닫는 국내정세에 급기야 자신들이 깎아내려 마지않던 ‘노무현 효과’를 끌어안게 된 셈입니다.

오늘의 쿡기자에서는 ▲읍참마속보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에 가까운 내각 개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노풍’으로 막으려는 염치없는 태도 이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30일 우병우 민정수석을 비롯해 이재만 총무, 정호성 부속. 안봉근 국정홍보 비서관 등 이른바 ‘측근 3인방’을 전격 경질했습니다. 이들 외에도 이원종 비서실장,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김재원 정무수석, 김성우 홍보수석의 사표도 수리됐죠.

비서실장과 수석 5명, 박 대통령과 18년 호흡을 맞춰온 측근 3인방이 모두 바뀐 셈인데, 이를 놓고 일부 언론과 단체는 ‘읍참마속’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파국에 치닫는 정권상황에서 대규모 청와대 인적 개편을 통해 쇄신을 꽤하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역사적 미화는 차치해 두고서라도 제갈량이 마속의 목을 벤 데에 사사로운 감정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제갈량이 속한 촉은 위·오와 비교해 군세나 인물에서 크게 뒤쳐져 있었습니다. 군의 핵심 장수인 마속이 처형당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군사적 계산 이상으로 대의(大義)가 중시되던 시대적 가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현 정권의 내각 개편을 읍참마속에 빗대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이미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사로움이 만연한 정권에서 대의를 따질만한 건더기가 없습니다. 더구나 군법을 어긴 선봉장에 다름 아닌 ‘우두머리’가 있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경우 ‘돌려먹기’ 논란이 불거진 지 몇 달이나 지난 후죠. 이제야 내각 개편을 단행하며 틀어진 문제를 바로 잡겠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해석은 어느 극 친정권 언론사의 만평에서나 나올법한 우스꽝스런 이야깃거리입니다.

김병준 교수가 국무총리에 임명된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일 김 교수의 총리 임명에 대해 “현 상황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대통령 비서실을 개편했고,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국민안전처 장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키로 했다”면서 “김 총리 내정자는 학문적 식견과 국정경험을 두루 겸비한 분이다. 현재 직면한 여러 난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내각을 탄탄히 이끌어갈 적임자로 판단돼 총리 후보자로 내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김병준 교수는 경북 고령 출신으로 영남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국민대 교수가 됐습니다. 1992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이사장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노 대통령 당선 직후엔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로 활동했죠. 이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정책특보 등을 두루 거치며 ‘행정수도’ 공약을 입안하는 등 국가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 허브역할을 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친노를 깎아내리던 선봉장에 있던 이들이 이제는 ‘노풍’에 기대 대통령 다음 가는 권력을 친노 인사에게 배정했습니다. “직면한 여러 난제를 극복할”이라는 정 대변인의 ‘워딩’에서, 그래도 국민정서에 따뜻함을 일으켰던 ‘노풍’을 인정을 하긴 하나 봅니다.[친절한 쿡기자] 박근혜 내각 개편을 ‘읍참마속’에 빗댄 발칙함은 어디에서 나왔나

연합뉴스는 이번 김병준 교수 내정에 대해 ‘한솥밥 동지서 정치적 대척점에 선 문재인·김병준’이란 제목을 썼습니다. 다른 매체들도 연달아 친노 대표 인사인 문재인과 ‘친노계 정책왕’ 김병준의 향후 대립관계에 대해 조명하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한 언론은 김병준 교수의 총리직 임명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 대표 중 한 사람의 ‘천거’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해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어떤 해석이 나오든 박 정권이 ‘노풍’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계기 없이 대뜸 위기극복의 대안으로 ‘노풍’을 전방에 세운 건 가증스럽게까지 비춰집니다. 어떻든 까도 까도 계속 새로운 ‘단독기사’를 창출해내는 ‘최순실 양파 게이트’를 막는 건 설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힘들어 보입니다.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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