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왜 신대철은 보수 단체가 부르는 ‘아름다운 강산’에 분노했을까

기사승인 2016-12-19 16: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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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왜 신대철은 보수 단체가 부르는 ‘아름다운 강산’에 분노했을까

[쿠키뉴스=인세현 기자] “TV를 보다가 너무 기가 찬 광경을 봤다”

밴드 시나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은 지난 17일 자신의 SNS에 이처럼 시작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습니다. 기가 찬 광경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른바 친박 단체가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중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신대철은 이 노래를 만든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이죠. 신대철은 집회에서 친박 단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참으로 어이없다”며 분노를 표했습니다.

신대철의 글에는 그가 분노한 이유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아름다운 강산’은 친박 단체 집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입니다.

‘아름다운 강산’은 신중현이 1974년 발표한 노래죠. 신중현은 당시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이끌며 최고의 작곡가로 활동했습니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1집 앨범에 실린 ‘미인’을 비롯해 김추자의 ‘거짓말’ 등을 만들며 음악가로서 승승장구했죠.

하지만, 그에게 뜻밖의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당시 청와대로부터 ‘각하’(박정희)의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신대철은 “아버지는 그런 노래는 만들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 후 공화당에서 다시 전화가 왔고, 만약 만들지 않으면 다친다는 협박도 한다. 하지만 재차 거절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신대철은 “그 이후 아버지의 작품은 줄줄이 금지곡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신대철의 말대로 당시 인기곡이었던 ‘미인’과 ‘거짓말’ 등 수십 곡이 군사 정권 내내 금지곡으로 지정돼 자유를 잃습니다.

이 상황에서 고심하던 신중현이 만든 노래가 바로 ‘아름다운 강산’입니다. 신중현은 이 노래를 신중현과 엽전들의 2집 앨범에 수록했죠. 이 곡은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 수 없지만,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있다’는 신중현의 의지가 담긴 노래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에 관한 노래이지만, 이 곡 또한 발표 후 금지곡이 됩니다.

‘아름다운 이곳에 내가 있고 네가 있네 /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 우리들 모여서 말해보자 새 희망을’,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 먼 훗날 너와 나 살고지고 영원한 이곳에 우리의 새 꿈을 만들어 보고파’ 등의 가사가 문제 된 것이죠.

신대철은 이에 관해 “다른 의견은 철저히 배격됐던 시대의 외침으로 ‘우리들 모여서 말 해보자, 새 희망을’ ‘우리의 새 꿈을 만들어…’ 노래한 것이다. 어쩌면 아고라 민주주의 실현을 꿈꾼 것일까”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집회에 대한 탄압이 서슬 퍼런 시대, 신중현은 ‘아름다운 강산’을 위해서는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가 모여서 새로운 희망을 말해야 한다고 노래한 것이죠.

신대철은 1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해 “이 곡의 유래와 계기를 모르는 분들이 그분들의 시각으로 노래를 들으시는 것 같다. 그것이 안타깝다”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밥주걱을 숟가락으로 쓸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신대철은 “그분들이 박정희 지지자라면 새마을 노래를 부르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금지곡이었고 아무도 부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강산’은 현재 국민가요가 됐습니다. 모두에게 친숙한 노래이며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이는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 찾아온 민주주의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불러서는 안 되는 노래일지도 모르죠.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창작에 대한 탄압이 당연시됐던 그 시절을 향수하는 사람들이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노래인 셈입니다.

이런 맥락을 살펴봤을 때 신대철이 신중현의 아들로서, 한 명의 음악가로서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신대철은 “촛불집회 집행부는 나를 섭외하라. 내가 제대로 된 버전으로 연주하겠다”고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조만간 광장에서 모두가 부르는 ‘아름다운 강산’을 들을 수 있을까요.

inou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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