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정호성 녹음파일 속 최순실의 지시 정황…불통 대통령의 밀실 소통

기사승인 2017-01-05 15: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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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정호성 녹음파일 속 최순실의 지시 정황…불통 대통령의 밀실 소통

[쿠키뉴스=이소연 기자] ‘프린세스 메이커’는 지난 19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육성시뮬레이션 PC 게임입니다. 이용자는 부모가 되어 게임 속 캐릭터인 ‘딸’에게 교육·아르바이트 등의 활동을 지시합니다. 딸을 공주로 성장시키는 것이 이 게임의 최종 목표죠. 

지난해 10월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현실판 프린세스 메이커를 한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일 언론에 공개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최씨의 통화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더 이상 농담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TV조선이 보도한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취록에는 최씨가 지난 2013년 박 대통령의 중국 칭화대 연설에 개입한 정황이 담겨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직전, 최씨는 “연설 맨 마지막에 중국어로 하나 해야 될 것 같다”며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문화와 인문 교류를 통해서 여러분의 미래가 밝아지길 기원한다’고 하라”고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했습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칭화대에서 중국어로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문화와 인문교류를 통해서 여러분의 앞날에 광명이 비추길 기원합니다”라고 연설했습니다. 사실상 박 대통령은 최씨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겁니다.

이외에도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취록을 통해 최씨가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 시간을 지정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현안 관련 발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실도 드러났죠. 놀랍게도 녹취록 속 최씨의 말은 박 대통령을 통해 실제 국정 운영에 반영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청와대 참모와 장관, 국민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불통’ 대통령으로 불렸습니다. 지난 4년간의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는 요인 중 1위는 늘 ‘소통 미흡’이었습니다. 2015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장관들과의 대면보고가 부족한 것 아니냐’며 소통의 부재를 꼬집는 질문이 나왔을 때도 박 대통령은 “대면 보고가 꼭 필요하다고 보냐”고 장관들에게 되물었습니다. 앞으로도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의지가 없음을 시사한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외침을 외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46일간 단식을 진행했습니다. 다른 유가족들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일절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기간 연장 요구도 무시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12·28 한·일 위안부합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안부 합의는 국민의 여론 수렴과 양해를 구하는 과정 모두 생략된 채 진행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거센 반발을 받고 있는 성과연봉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국정교과서 등의 정책도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 없이 강행했습니다. 

심지어 최씨의 국정농단을 사과하는 세 번째 대국민담화 후에도 박 대통령은 변치 않는 불통을 보여줬습니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경위를 소상히 밝히겠다”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담화 이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박 대통령은 “최씨의 국정농단과 자신은 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입장만 표명했을 뿐입니다.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바로 ‘소통’입니다. 스웨덴의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는 재임 기간 매주 목요일마다 자신의 정적(政敵)인 우파 정치인, 재계 인사와 노동자 등을 초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경청, 정책에 반영해 ‘국민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대한민국 인구는 약 5169만명입니다. 박 대통령이 귀담아들어야 할 국민의 목소리가 5000만에 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은 최씨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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