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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으로] “그림을 선택하고 미술치료를 직업으로”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미술치료사·화가 김형희 씨

이영수 기자입력 : 2017.03.22 09:45:45 | 수정 : 2017.07.10 15:09:52

[쿠키뉴스=이영수 기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가 손상된, 그래서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수술과 힘겨운 재활, 그리고 긴 터널 같던 실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직업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뒤돌아보니 아직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척수장애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희망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다 교통사고, 낙상, 의료사고, 질병 등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이들에게 가족, 친구,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장애를 딛고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12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홀로 한 달간 유럽 7개국 25개 도시를 누비고 유럽여행기 펴낸 휠체어 여행가 홍서윤 씨의 이야기에 이어 장애인 미술치료사 겸 화가인 김형희 씨를 소개합니다.

중환자실에 9일 있으면서…

“제2의 인생을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하는 것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일이 필요해요. 본인의 열정이 가장 중요하고 무슨 일이든 같이 어울려서 즐겁게 할 수 있는지를 첫 번째로 봐야합니다.”

“중환자실에 9일 있으면서 옆 환자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았어요. 감각이 없는 신체에 불이 난 것 같은 느낌에 피부가 벗겨지고 손톱발톱이 다 빠지기도 했어요. 장기간 입원에 강제 퇴원을 당해 큰일 날줄 알았지만 오히려 집에서 컴퓨터와 그림을 시작한 계기가 됐죠.”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미술치료사·화가 김형희 씨

현대무용을 전공… 숱한 무대에 섰다

인생에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차를 왜 탔는가하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그 후의 인생이 나빴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순간순간 우울해질 때도 있지만 그림을 선택하고 미술치료를 직업으로 선택한 후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운명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잔인한 운명일지 모른다. 김형희 씨는 늘 주목받는 인생을 살아왔다. 현대무용을 전공하며 예술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에서 숱한 무대에 섰다.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수십 번 허공으로 점프하던 연습시간을 사랑했다. 모델 활동을 할 만큼 키 크고 늘씬한 그녀는 남부러울 것 없는 1남 1녀 외동딸이었다.

병원에서 9개월을 보내고 난 후

“운전면허를 딴 지 한 달밖에 안 된 친구의 차를 얻어 탔어요.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가속페달을 밟는 바람에 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어요. 안전벨트도 없이 뒷좌석에 앉았던 저는 키가 커서 목이 부러졌지요.”

응급처치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정신을 잃은 그녀는 긴박하게 택시에 태워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차체의 진동은 부러진 목을 압박했고 신경손상이 너무 커서 완전마비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9개월을 보내고 난 후, 직장도 그만둔 아버지가 집에서 매일 관절운동을 시켜주셨어요. 나무토막 줍기 같은 걸 끝도 없이 하다가 주위에 널린 게 무용잡지다보니 춤추는 모습을 그리게 되었지요. 초기 작품들은 굉장히 괴기스러운데요. 무용수들의 피부톤을 초록이나 보라로 표현한 것 은 저의 심리를 반영한 거예요.”

팔 힘이 생긴다해 시작하게 된 그림

밥숟가락조차 들어올리기 힘든 상태에서 팔 힘이 생긴다해 시작하게 된 그림이었다. 붓을 쥘 악력이 없어서 붕대로 손을 묶은 다음 캔버스를 채워나갔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은 화폭을 훨훨 나는 자유로움에 아픈 현실을 잊었다. 무용을 테마로 살던 그녀의 인생은 캔버스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98년에 장애인 미술대전에 상을 받은 사람들이 제주도로 스케치 여행을 갔어요. 그때 봉사자로 온 6살 연하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죠. 5년 연애를 하면서 양가 부모님 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었어요.” 사랑과 결혼을 하면서 그림의 색채는 핑크와 흰색으로 밝아졌다. 2006년 임신을 하면서 찾아온 산후우울증은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척수장애가 있는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던 그녀는 미술치료에서 해답을 얻었다.

미술치료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

“미술치료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힐튼컬러테라피에서 미술치료를 배우고 대한임상미술치료학회에서 임상미술치료사 자격증을 땄어요. 3년 동안 이론 100시간, 임상실습 500시간, 사례발표 20시간을 마쳐야 하니 쉬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 해방구가 되었어요.” 척수환자들의 미술치료에 대한 가능성은 인정받았지만 젊고 장애가 없는 학우들과 어울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공부에만 매달렸다. 강의실 편의시설이 엉망이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남편의 지지로 고비를 넘기길 수차례, 차의과대학교 대체의학대학원에서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습니다.

죽음의 문턱·결혼·아이, 경험과 연륜이 되다

“장애인 미술치료사가 유리한 데가 있어요. 참가자들이 저를 보고 위안을 받는 달까, 공감대 형성이 빠르거든요. 저는 죽음의 문턱까지도 갔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으니까 이런 경험과 연륜들이 미술치료 과정과 상담에 훨씬 유리한 것 같아요.”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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