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천우희 "여배우니까 예쁘기만 하면 돼? 기분 나빠"

기사승인 2017-04-06 14: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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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천우희는 영화 ‘어느 날’(감독 이윤기)에서 일종의 안내자가 된다. 주인공인 강수의 상처를 마주하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단미소이자, 관객들을 결말로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는 배우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털어놨다. ‘평범한 캐릭터는 싫다’가 아닌, 기존 캐릭터의 불편함을 새로 풀어냄으로서 관객들이 새로움을 편안히 접할 수 있게 하는 구도자적 책임감이다.

단미소는 애초 시나리오 상에서는 청순가련하기 그지없는 시각장애인 여자였다. 그간 한국 멜로 영화들에서 등장한 시각장애인 여성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청순가련’ 속성은 일종의 클리쉐지만, 천우희는 그 클리쉐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에 주목했다.

“원래 ‘어느 날’은 ‘와이엔젤’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어요. 미소는 주인공인 강수를 내내 아저씨라고 부르죠. 그 호칭과 제목, 그리고 문어체의 대사가 조합해서 만들어내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었어요. 청순가련한 시각장애인이 가지는 시나리오적 강박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미소 캐릭터를 보고 의문이 생겼어요. 이 영화는 2017년에 개봉하는데, 그 때의 관객들은 과연 미소를 흥미로워할까? 하는 생각이요. 어찌 보면 아주 예전부터 여성 캐릭터는 우리가 익히 아는 프레임 안에 갇혀 있거든요. 그 프레임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미소 캐릭터를 많이 바꿨어요. 저는 보통 캐릭터를 연기할 때 시나리오 자체를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제 스스로를 속에서 많이 꺼내다 쓰는데, 미소 캐릭터는 저 스스로를 제가 많이 끌어 쓴 아이에요.”

여배우들이 자주 말하는 “충무로에 여성 위주의 작품이 많이 없다”는 지적과는 또 다른 관점의 이야기였다. 범람하는 시나리오 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 분명 있고, 천우희는 그 한계점을 넓히려는 시도를 매번 해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작품에서 천우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지점도 그런 면모 덕분일 것이다.

[쿠키인터뷰] 천우희

“예전에는 제게 작품이 그리 많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때는 그래서 제게 평면적인 캐릭터가 들어와도 편하게 생각하고 싶었죠. 왜냐하면 일을 많이 할수록 더 좋은 기회들이 계속 들어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선택의 폭은 자연스레 넓어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갈수록 현실적인 부분이 너무 많이 다가오더라고요. ‘여배우에게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은 과연 이것뿐일까?’하는 생각이 계속됐어요. 그렇다면 나는 계속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여배우로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획기적인 작품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요.”

기다려야 하느냐, 조금씩 변화시켜야 하느냐 하는 기로에서 천우희는 처음에는 전자를 선택했다. 그러나 전자를 선택하고 나서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과연 관객들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부딪혔다. 대답은 ‘아니다’ 였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니라면 남들에게 보라고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관객들은 돈을 내고 오는 사람이고, 저는 돈을 받고 연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값어치를 해야 해요. 그런데 제가 연기한 작품에 관해 자신있게 ‘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결국 천우희는 후자를 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여실히 보였고, 천우희는 스스로 변화하기를 택했다는 것. “감사하게도 지금의 제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어요. ‘넌 여배우니까 예쁘게 가만히 있어’라는 반응이 종종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여배우를 쓰는 것은 기분 나빠요. 여자인 배우거든요. ‘여배우들도 이런 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관객에게 들게 하고 싶고, 나아가 그저 ‘배우’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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