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의료인 증언집, 37년 숙원 푼 것”

[인터뷰]전남대병원 윤택림 원장-②,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발간

기사승인 2017-06-12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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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는 전남대학교병원 윤택림 원장을 시작으로 국립대병원장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윤 원장의 인터뷰는 2회에 걸쳐 게재됩니다_기자 말.


[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이날(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은 병원 담 쪽을 에워싸더니 일제히 총격을 가했으며, 이후 안으로 들어와 일일이 병실을 검문했다. 날이 밝아 확인한 결과 당시 임시숙소로 사용했던 11층 병실의 유리창 대부분은 총격에 깨졌다.”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중 유경연 전남대의대 명예교수 증언 일부)

지난달 전남대병원은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을 발간했다. 발간 작업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의 눈을 피해 조용히 진행된 발간 과정은 고통스럽고 지난했다.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조차 거부했던 정권 하에서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으리라 예상했다.

책은 5·18 당시에 대한 의료인 증언집으로, 끝까지 한번에 읽기 힘들 정도로 가슴 아픈 내용이 담겨있었다. 의료진의 증언은 생생하고 충격적이었다. 8일 전남대병원에서 만난 윤택림 병원장은 “의료인들의 증언이 37년 만에 나온 것은 그간의 세월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윤 원장에게서 전남대병원의 ‘어제와 오늘’을 장시간에 걸쳐 들있었다.    

“치유되지 못한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는 작업”

Q.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의 발간 취지가 궁금하다.

=전남대병원은 숱한 역사의 질곡을 거쳐 왔다. 이번 책 발간은 그동안 채우지 못한 역사의 한 조각을 맞추게 된 것으로 평가한다. 5·18 당시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선배 의료인들의 기록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전남대병원의 오랜 숙원이었다. 당시 의료진들은 37년이 지나면서 정년을 맞아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정리의 시간이 촉박했다. 그들의 기억이 소중한 역사적 자료인 만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Q. 증언집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발간됐나.

=지난해 8월부터 내·외부 자료수집과 증언 자료 검토를 시작으로 착수됐다. 6개월 동안의 자료 수집에 이어 올해 2월 발간 및 감수위원 등 위원회를 구성, 교정 및 감수를 거쳐 5월 발행하게 됐다. 자료 수집은 증언자들이 직접 작성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정리하고 이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기존 일부 책자와 보고서 제출 내용을 발췌하는 방법도 겸해 이뤄졌다.  

Q. 발간까지의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 텐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었다. 의료진들에게 당시의 기억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깊은 상처로 남아있었다.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이었다. 일부 증언자는 그 날을 회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시 여러 경험을 했던 증언자는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해 끝내 증언을 포기했다. 5·18 바로잡기와 병원 역사 정리를 위해 아픔을 감내하며 증언에 임한 의료진들에게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Q.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나.

=집단발포로 응급실은 총상환자들로 넘쳤으며, 쉴 새 없는 응급수술이 진행됐던 긴박한 상황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21일과 27일 이틀 동안 병원을 향한 무차별 사격이 진행되는 동안 의료진들이 느낀 두려움, 환자들의 참혹한 모습을 본 계엄군 진압에 대한 분노, 수술을 기다리다 안타깝게 죽음에 이른 부상자에 대한 좌절감 등 극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맞닥뜨린 감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Q. 당시 의사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의사도 사람이다. 왜 가족들의 생사가 걱정되지 않았겠는가. 개인의 감정보다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에 집중한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간호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 오는 행위 자체가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간호부장은 간호사들에게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서 치료에 전념했다. 얼마나 치열하고 간절한 심정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Q. 의료진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그간의 자료집과 차이점을 갖는다. 

=분쟁지역에서 의료인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환자라면 누구나 돌본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의료진이 직접 경험한 증언은 객관적 사실과 감동을 전달한다. 37년 만에 의료진의 증언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그동안의 세월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는 것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5·18 진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Q. 증언집의 현대사적 의의와 가치를 평가한다면.

=올해는 여느 해보다 5·18이 뜨거웠다. 발포명령자, 헬기사격 여부 등 진실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는가 하면, 전두환 회고록 파문 등 사실을 왜곡·펨훼하는 일도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5·18은 끝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은 5·18 역사바로잡기를 위한 소중한 자료로써 국내의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동시에 당시 부상자를 치료했던 많은 병원들 중 단일병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발행하는 5·18의료 활동집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5·18 의료인 증언집, 37년 숙원 푼 것”

Q. 그럼에도 5·18 폄훼 주장은 멈추지 않고 있다. 

=전두환 회고록에서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번 증언집을 통해 거짓이라는 게 다시 한번 입증됐다. 증언집에는 참혹한 모습의 환자들에 대한 증언과 병원에 대한 무차별 사격 등의 목격담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은 한국 현대사 재조명에 소중한 자료이자 이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다.  

Q. 박근혜 정부 하에서 진행된 작업이다. 국립대병원장으로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게 만들고자 했다. 오류가 있어선 안됐다. 당시 의료진의 증언은 고증과 감수를 거쳐 사실 관계를 정밀하게 살려냈다. 기억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오랜 세월 5·18 폄훼세력이 득세하면서 참아온 시절이 자그마치 37년이다. 그동안 일부 보고서가 있었지만 제대로 반영이 안됐다. 현재의 자료와도 상이하고 축소하려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건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출간을 반대하는 세력이 끼어들까봐 책 작업은 조용히 진행됐다. 

Q. 향후 전남대병원 차원의 5·18 민주화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번 책 발행은 전남대병원 5·18 민주화 기념사업의 첫 걸음이다. 우선 당시 의료진들의 증언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번에 기록된 30명의 증언뿐만 아니라 참여의 뜻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의 증언을 앞으로도 담아낼 계획이다. 다큐멘터리 제작도 상의 중에 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심포지엄 등을 통해 5·18에 대한 의학적인 재조명과 분석도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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