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신 기본료 폐지’ 둘러싼 진통,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기사승인 2017-06-1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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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통신 기본료 폐지’ 둘러싼 진통,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쿠키뉴스=김정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전 이동통신 요금 1만1000원 인하를 골자로 한 기본료 폐지 공약을 내세운 것을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기본료’는 무엇이며 1만1000원은 어디서 나온 액수인가 싶었다. 이통사들이 당황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예상대로 기본료 폐지는 적잖은 진통을 낳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이견을 좁히지 못해 미래부 업무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강수를 뒀고 당사자인 이통사들은 초조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통신비 인하를 통해 가계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에는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민생을 챙기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방법론이 문제가 됐다. 요금 인하 정책은 문 대통령과 같은 당 우상호 의원이 수년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했던 부분이다. 우 의원의 의견이 별 다른 논의 없이 그대로 공약에 반영된 것은 아닌지 의문도 든다.

이와 관련해 기본료 폐지의 정당성 문제와 부작용이 지적된다.

우선 일괄적으로 얼마씩 요금을 인하하라고 정부가 공기업도 아닌 민간 사업자에게 명령할 법적 근거가 없다. 또 이 같은 부자연스러운 시장 개입이 가져올 여파와 실효성도 고려해야 한다. 과거 MB 정권에서도 통신요금 1000원 인하가 단행됐지만 일방적이고 체감 효과는 낮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만1000원이라는 액수도 과거 2G, 3G가 아닌 4G 데이터 요금제에서는 ‘기본료’라고 정의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가계 통신비 인하의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다.

또 일괄적으로 1만1000원의 통신비를 인하할 경우 국내 가입자 수를 감안해 단순 계산해도 연간 7조원이 넘는 부담을 업계가 떠안아야 한다. 

이는 국내 이통 3사의 무선사업 연간 영업이익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ICT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의지에 찬물을 끼얹기는 충분하다. 정부가 공공연히 언급하는 ‘5G 시대’에 대한 투자 위축도 포함된다. 물론 마케팅 비용 축소 등으로 소비자 혜택이 줄어들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도 다소 당혹스러운 기색이다. 일괄 1만1000원 인하가 아닌 2G, 3G부터 순차적 요금 인하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공약을 축소‧왜곡하지 말라’는 시민단체의 반발로 이어졌다.

2G, 3G 요금 우선 인하 대안 역시 해당 서비스를 주로 하는 알뜰폰 사업자들의 경쟁력을 완전 상실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표현이 들어맞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9일 국정위와 시민단체들은 토론회를 열고 기본료 외에 지원금 상한제 폐지, 지원금 분리공시제 등 다양한 관련 제도를 함께 논의했다. 기본료 폐지라는 정책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날 이통사, 정부, 국회, 전문가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연한 결과다. 공약 설정 과정에서 부실했던 검토 단계를 진통을 겪고서야 거치는 꼴이다. 

충분한 논의와 협의 끝에 타협 가능한 대안이 모색된다면 이통사를 포함한 누구도 ‘명분 없는 반대’를 할 수 없다. 이런 과정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업계가 일방적인 부담을 안게 된다면 이 또한 ‘적폐’가 아닐까.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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