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일상예찬-②] 치매환자와 가족의 ‘행복한 소풍’

기사승인 2017-06-13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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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송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만나 “국가가와 사회가 치매를 책임지겠다”며 선거 당시 공약이었던 ‘국가치매책임제’ 실천의지를 재차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또한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집안에 심하게 치매를 앓은 어르신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며 전국 치매지원센터 확대, 치매전문병원 건립, 치매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고통받은 치매환자와 가족들

하지만 여전히 치매환자와 가족들은 일상에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경찰 발표에 따르면 고령의 치매환자가 실종 신고 건수가 2012년 7650건에서 2014년 8207건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작년에는 고령 치매환자 실종 신고 건수가 9869건으로, 하루 평균 27건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종된 고령 치매환자들이 경찰이나 주변 이웃들의 신고와 보살핌으로 보호자들에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실종된 고령의 치매환자가 숨진 채 발견되는 사례도 많다. 또한 고령의 치매환자를 돌보기 힘들어 감금을 하거나 학대하는 경우도 종종 언론에 보도된다.

지역사회에서 고령의 치매환자를 돌보기 위한 인프라와 사회안전망 등 국가 차원의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가 나오는 이유다.


◇치매환자에게 일상을 돌려줘야 하는 이유

이러한 이유로 치매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과 지역 치매센터, 치매 가족(보호자)들은 치매환자가 기역력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재홍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은 “초기 치매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일상생활 수행능력 장애를 적절히 관리한다면, 환자와 보호자의 부담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대한치매학회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지난 5월부터 6월초까지 ‘일상예찬, 시니어 조각공원 소풍’ 행사를 진행했다. 이 캠페인은 지난 2015년부터 대한치매학회와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약 체결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치매환자와 보호자들이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 관람 및 미술활동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또한 외출이 힘든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소중한 경험과 함께 심신을 위로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치매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일상예찬, 시니어 조각공원 소풍’ 행사에 참여한 치매환자 보호자 K씨는 오랜만의 나들이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K씨는 “미술관을 찾은 남편이 너무 신기해 하고, 치매 때문에 집에서만 지내느라 웃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공기 좋은 곳에서 미술작품을 보면서 웃는 모습을 보니 너무 고맙다. 남편하고 외출 한번 하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미술관 소풍이라는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치매 진단을 받은 남편을 대신해 가장이 된 K씨는 청소 일이 주로 밤 늦게나 새벽에 많아, 혹시 일하는 시간에 남편이 깨지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특히 근무시간이 식사 때와 겹치면, 남편에게 식사를 챙겨줄 사람이 없어 지역치매센터 직원에게 부탁해야 했다.

현재 K씨는 남편 간병을 위해 일을 잠시 그만둔 상태다. K씨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남편을 돌보는 것도 힘에 부쳐갈 즈음 치매센터 직원의 권유로 ‘일상예찬 소풍’에 참여하게 됐다. 지난 5월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소풍을 간 K씨 부부는 모처럼 큰 위로를 받고 좋은 기억을 만들었다며 웃었다.

이번 캠페인에 함께한 은평구치매지원센터 안우진 간호사는 “치매 어르신들의 경우 나들이를 위해서는 가족 등 보호자가 함께해야 한다. 결혼하고 출가한 자식들이 매번 집에 방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온다면 명절이나 생일 때인 것 같다”며 “일상예찬 소풍은 외출이 어려운 분들에게 만들기 수업이나, 조작품 전시 관람을 통해 많은 기쁨의 기억을 준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잊혀지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기억…치매도 우리 삶의 한 부분

또 다른 치매환자 보호자 L씨는 “난생 그런 구경은 처음 해봤다. 구경을 시켜주는 선생님들도 너무 친절해서 좋았다. 남편(치매환자)은 도시락이 맛있었다고 좋아했다. 집이 아닌 바깥에서 밥을 먹으니 좋았던 것 같다. 오래 걸으면 지치고 힘들어 할텐데 전혀 힘들어 하지 않고 즐거워했다. 우리에게 즐거운 기억을 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처럼 치매환자들에게 일상을 돌려주는 것은 치매환자는 물론 치매 돌봄으로 인해 지쳐있는 가족(보호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재홍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은 “대한치매학회는 치매 환자와 보호자에게 일상생활 수행능력 유지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신적인 위로를 전하기 위해 일상예찬 캠페인을 2012년부터 6년째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캠페인을 함께 펼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문화과 강수정 과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은 모든 관람객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분들과 환자를 돌보느라 지쳐있는 가족과 보호자들에게 미술작품과 아름다운 환경을 함께 공유하면서, 힐링과 치유의 장을 제공합니다. 또 아픔을 함께 공유하면서 치유도 되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강수정 과장은 “미술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오랜 기간 치료에 지쳐 미술관을 찾아오기 힘든 공간으로 여기게 된다. 치매환자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치매환자와 보호자들을 초청함으로써, 초록이 완연한 아름다운 계절과 예술작품을 함께 할 수 있다”면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잊혀져가는 기억을 아름답게 다시 재현해보고, 가족들과 함께 잊혀지지 않을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행사에 치매환자들과 함께했던 성동구치매지원센터 박성현 작업치료사는 이런 행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성현 작업치료사는 “소풍에 참석한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도록 유도 해주신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았다. 집에서 드러내지 못한 속내를 털어놓으며 서로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진 것 같다. 보호자가 없는 독거노인들을 위한 소풍도 기획되면 좋겠다. 자원 봉사자를 동반해 그분들도 소풍에 참여하고 속 안에 가진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치매조차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강수정 과장은 “예술이 감싸 안을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잊혀져간다는 것조차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부분이다. 잊혀져서 아름다운 것, 기억해서 아름다운 것이 있다. 치매학회와 함께하는 일상예찬 프로그램은 잊혀지지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치매환자들이 만든 작품이나 이야기들을 보면 치매조차도 우리의 삶과 예술의 한 부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웃어보였다. songbk@kukinews.com

영상 촬영: 이승환 쿠키건강TV 감독 
영상 편집: 홍현기 쿠키건강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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