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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을기록하다⑭] 옛날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다

대한민국 임산과 출산, 어제와 오늘…반세기 이어온 제일병원

송병기 기자입력 : 2017.06.22 00:05:00 | 수정 : 2017.07.10 15:11:45

제일병원에서 근무했던 전종수 박사(오른쪽)와 현재 근무중인 류현미 교수(왼쪽)

[쿠키뉴스=송병기 기자] “병원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밤이건 새벽이건 산모가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병원을 가야하는데 매번 검문을 하더라고. 나는 빨리 가서 분만하려는 산모와 곧 태어날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검문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답답한거지.”

야간통행 금지가 있던 1960년대와 70년대 산부인과 의사로서 산모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밤낮없이 분만실에 있었다는 전종수 박사의 회상이다.

1934년생인 전 박사는 1966년 4월1일부터 1992년 9월30일까지 26년간 제일병원에 근무한 산과학의 원로 의사로, 우리나라 임산과 출산의 역사를 함께한 소위 ‘옛날 의사’다.

전종수 박사가 몸담았던 제일병원을 떠날 즈음 제일병원에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를 시작한 류현미 교수(제일병원 유전학연구실장)를 만나 우리나라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탄생은 의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들어봤다.



◇임신 출산의 과거 현재 미래

전 박사는 “1960년대 제일병원이 개원하던 당시에는 조산원제도가 있어서 조산원에 계신 분들이 분만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60년대부터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분만을 하는) 시기로 이행이 되는 과정에 있었다”며 “당시에 우스갯소리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없는 시골같은 곳에서는 조산원에 계신 분들이 길을 걷다가 임산부를 만나면 집에까지 쫓아가서 분만을 하도록 하던 때였다”고 말했다.

50여년전 우리나라 분만 환경은 말 그대로 의학적으로 초보 수준이었고 전 박사는 회상했다. 물론 산부인과 의사들이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분만을 담당할 정도로 일이 많았지만, 의사로서 사명감은 매우 컸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에는 분만을 담당하는 큰 병원 소위 대학병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규모가 있는 병원의 경우 분만 건수가 매우 많았다. 전 박사는 “지금도 물론 후배 의사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만, 당시 산부인과 특히 산과 의사들은 잠도 못자고 밥도 제때 못먹고 산모를 돌봤다”고 기억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 전종수 박사는 “분만을 많이 담당하던 때 월 120건을 기록한 적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또한 당시 태아감별이 불가능해 아들 낳기를 선호하거나, 아이가 태어나는 시간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전 박사는 “산모는 아이 나온다고 아프다고 하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와서 ‘몇시에 아이를 낳아야 좋다. 그때로 맞춰주실 수 있냐’라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가 산모가 ‘나는 아파 죽겠는데 무슨 소리냐’고 소리를 지르니, 남편이 허겁지겁 도망을 갔다”며 “다음날 아이를 낳고 회진을 하는데 산모가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창피했는지 나를 보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더”라며 웃었다.

당시에는 분만 과정에 사용할 초음파장비가 매우 귀했다. 물론 성능은 현재 장비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사로서 매우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됐다.

제일병원은 1974년 11월 국내 최초로 초음파기기를 도입했다. 전 박사는 “장비가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이게 고장이 나면 문제였다. 한번 고장이 나면 우리나라에서 수리를 못하고 장비를 다시 미국으로 가지고 가서 수리를 해야 했던 시절”이라고 설명했다.

50년이 넘은 현재 산부인과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의학기술은 급격히 발전했다. 특히 아이를 낳는 분만 환경은 인식은 물론 의료환경에서도 50년의 차이는 매우 크다.



◇최근 고위험 산모 많아

류현미 교수는 “최근에는 고위험산모들이 많다. 난임인 사람들이 많아서 시험관 아기 시술이 굉장히 많이 이뤄지고 있다. 2015년 기준 제일병원 자료를 분석해보면 6000명 출산한 산모들 중 약 12%가 시험관 아기였다. 매우 비율이 높은 수준이고, 그만큼 성공률도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류 교수는 “과거에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산모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고령 산모가 대부분이다. 작년 제일병원 데이터를 보면 출산한 산모들의 연령대가 35세 이상이 43%, 40세 이상 산모가 약 20%에 달할 정도다. 최근에는 대다수가 고위험 산모”라며 “물론 비약적인 의학기술 발전으로 안전한 분만환경은 기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우리나라  시험관 아기 시술 성적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분야다. 류 교수는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사들의 실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시험관 아기와 불임, 난임 치료에 있어 임상 진료는 물론 연구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강조했다.

후배 의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전종수 박사는 “고생하는 후배 의사들을 위해 정부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임신과 출산,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의사들이 생명 탄생의 현장을 지키는 의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의료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고생을 많이 하죠.” 생명을 다루는 모든 의사들이 그러하겠지만, 생명의 출발점인 탄생의 순간 산모와 아이 곁을 지키는 의사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 옛날 산부인과 의사의 조언이다.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과 탄생의 의미에 대해 류현미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한 사회적,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하지만 우리가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20~30대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되는 것 같다”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1963년 개원 당시 제일병원 모습(사진제공=제일병원)


◇대한민국 임신 출산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한 제일병원

1963년 국내 첫 여성전문병원으로 문을 연 제일병원은 지난 50여년, 반세기 동안 평균 120분만다 한 명씩, 연평균 4380명, 총 22만여명의 신생아가 태어난 곳이다.

지난 54년의 세월동안 제일병원 임신, 출신과 관련한 국내 기록들은 매우 많다. 복강경 이용 영구 피임술 시술, 자궁암 조기진단센터 개설, 산부인과 분야 초음파검사 도입, 유방암글리닉, 국제세포병리사 자격증 획득 등 국내 최초로 시행한 성과들이 역사로 남아있다.

특히 국내에서 1986년 민간병원 최초 시험관아기 임신에 성공하며 국내 난임치료 분야의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성과를 바탕으로 제일병원은 산부인과를 주산기과, 난임생식내분비과, 부인종양학과 등으로 세분화해 17개 전 진료과를 여성건강, 임신과 출산에 맞춰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제일병원은 현재 연간 7000여건의 분만과 19만건의 산전 정밀검사, 31만건의 산부인과 진료, 3000건의 복강경 수술, 4만건의 유방검진 등 여전히 국내 산부인과 분야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songbk@kukinews.com

글: 송병기 쿠키뉴스 기자
영상 편집: 이동원 쿠키건강TV PD
영상 촬영: 고영준·이승환 쿠키건강TV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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