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통사 휘어잡은 정부, 칼 빼들었으면 제대로 겨누길

기사승인 2017-09-1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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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통사 휘어잡은 정부, 칼 빼들었으면 제대로 겨누길

정부의 ‘통신비 절감 대책’에 불만 가득하던 이통 3사가 결국 손을 들었다.

기존 20%였던 선택약정 할인(요금할인)은 예정대로 이달 15일부터 25%로 상향되고 행성소송 카드까지 만지던 이통사는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단순하게 볼 때 이통 3사가 요금할인 상향에 반대해온 논거는 ‘공시지원금을 받지 않는 소비자에게 동등한 수준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기존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 25%로 상향하는 제도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점 등이다.

이에 더해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압박이 반복된다’거나 ‘특정한 기준 없이 할인율을 높이면 다음에는 30%를 요구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등 맥락을 고려한 불만도 이어졌다.

본질적인 이유를 보면 ‘사업에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소비자에 제공하는 요금할인을 일괄적으로 높이면 당연하게도 영업이익이 줄어들게 되고 이를 감수할 만한 ‘당근’은 정부가 주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에 납부하는 주파수 경매 대금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나 5G 네트워크 등 미래 투자에 대한 지원책 등이 이에 해당된다.

대신 정부는 ‘채찍’을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정소송을 검토하는 시점에 맞춰 이통 3사는 방통위 실태점검과 공정위 현장조사를 맞이했다. 자연스레 이를 정부의 ‘압박’으로 보는 해석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일부 시민단체는 이통사의 비협조적 태도에 대한 비판을 끊이지 않고 내보내며 여론을 자극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전략은 먹혀 들어갔다. 이통 3사는 통신비 정책 관련 법 개정 등 향후 상황을 지켜보며 상황을 살피는 태세로 전환했다. 지켜본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정부 기조에 맞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단순히 정부의 강경책 효과로만 보기는 어렵다. 정부 역시 기존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던 ‘기본료 1만1000원 폐지’안을 보류하며 물러선 바 있다. 소비자 체감 효과에 비해 업계 부담이 막대한 비현실적 공약이었기 때문이지만 일단 한 수 접은 것을 사실이다.

기본료 폐지 논란 당시만 해도 정부가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평이 적지 않았다. 공공 와이파이 확대, 보편 요금제 출시 등 다양한 후속 대책이 모두 이통사 비용 부담을 요구한다는 점도 정부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반대로 이번 요금할인 인상 등과 관련해서는 ‘이제 이통사들이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는 시각이 많아졌다. 이통사들도 여론 악화를 감수하면서 ‘볼멘소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일련의 진통이 가시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방통위원장이 이통사에 ‘상생’ 카드를 꺼내들었다. 핵심 내용은 알뜰폰 사업자들의 경쟁력 약화를 좌시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통사 입장에서는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플레이어를 늘려 이통 3사의 시장 지위를 견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알뜰폰이 경쟁 우위를 상실하고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통사가 망을 빌려주는 도매대가를 낮춰주는 방법 외에 거론되는 대안은 없다.

실제 알뜰폰 사업자들은 요금의 절반가량을 이통사에 주고 있어 원가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반면 이통사들은 이익이 더 줄어드니 내켜할 리가 없다. 결국 한 쪽이 손을 들겠지만 갈등이 있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주무부처인 방통위, 과기정통부는 모두 새로운 수장을 맞아 바람직한 시장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외치고 있다. 원론적인 ‘좋은 이야기’다. 가계통신비 절감이나 시장 상생도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이다.

다만 여태까지는 정부와 업계의 소통은 매끄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앞선 통신비 진통은 위에서부터 내려온 정책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면밀하게 시장 상황을 살피고 생산적인 방법을 고민할 때다. 일단 칼을 댔으면 시늉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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