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임요환에 던져진 질문, 지금은 바뀌었나

기사승인 2017-09-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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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e스포츠 선수들의 연봉이 프로야구 선수에 필적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이상혁(페이커)의 경우 국내 프로야구 최고 연봉자인 이대호(4년 150억 원)에 비견되는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스포츠는 각광받는 미래 스포츠 종목입니다. 북미와 유럽, 중국에서 연이어 거대한 투자자가 나타나고 있고 선수들은 일찌감치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국내 시장 규모나 인식은 여전히 초라합니다. 친(親) 게임정권이 출범해 기대를 받고 있지만, 당장의 인식과 시장규모는 마이너 내지는 지하세계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쿠키뉴스 스포츠팀은 e스포츠의 현 주소를 점검하고 유의미한 담론을 제시하고자 이번 연재물을 기획했습니다. e스포츠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를 ‘신조어’라 합니다. 신조어는 단순 개개인이 잦게 언급한다고 성립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높은 빈도로 사용하면서 고착된 의미가 부여될 때 비로소 신조어가 될 자격을 얻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e스포츠’는 신조어입니다. e스포츠는 15년을 훌쩍 넘긴 문화 현상입니다. e에 스포츠란 단어가 붙음에 따라 이를 전업으로 삼는 이들을 프로선수 내지는 프로게이머라 부릅니다.

프로게이머의 시초라 하면 으레 임요환을 떠올립니다. 임요환 전에도 신주영, 이기석과 같이 게임대회 출전을 전업으로 삼는 이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임대회를 e스포츠로 격상시킨 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요환을 말합니다.

이제는 30-40대에 접어든 이들에게 임요환은 우상이었습니다. e스포츠 성립의 역사를 함께해온 자부심이 있죠.

임요환은 프로게이머 억대 연봉시대를 열었고, 체육요원 병역 특례인 공군 에이스 창단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엔 체계적인 팀 합숙 문화의 기초를 다지며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이 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스포츠에서 게임은 ‘종목’이다

축구를 취미생활로 즐기는 것과 별개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등에서 축구는 스포츠 종목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게임과 e스포츠는 밀접하게 연관돼있지만 동일시되진 않습니다.

‘스포츠’의 사전적 정의는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신체운동 경기의 총칭’입니다. e스포츠에 대한 저널리즘은 게임을 종목으로 보는 데에서 비로소 출발합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있습니다. 게임을 중독물 혹은 부정한 것으로 보는 시선입니다.

지금은 프로 포커 플레이어가 된 임요환을 비롯해 홍진호, 기욤 패트리 등 방송인으로 데뷔한 이들까지… e스포츠 시대를 풍미한 이들은 ‘프로게이머’란 딱지를 떼고 각자의 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사원·7급 공무원이 된 프로게이머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흥을 주기도 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인재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근거들은 반대자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임요환은 현역 시절 어려운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한 아침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받은 괴이한 질문들입니다.

▶“조직폭력배와 연결돼 있다던데…”

당시 진행자는 “높은 위치에 오르고 그러면 그야말로 현실에서처럼 위기감이 느껴지는가. 누군가 해칠지도 모른다는?”라는 질문으로 프로게이머를 잠재적 살인자 취급합니다. 이에 임요환은 “저 같은 경우 불안감을 같은 게이머에게 (경쟁 관계에서) 느낀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패널은 “저희 같은 사람은 게임도 안 돼요?”라고 비꼬죠.

이어 진행자는 “또 하나 문제되는 것이 (게임이) 조직폭력배 쪽으로 연결이 돼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진행자는 “그것(사이버머니)마저 털러 다닌다는 얘기인가”라고 묻습니다.

이후에는 “사이버머니가 1억쯤 있느냐” “PK(Player Kill)를 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느냐”와 같이 사실 확인이 안 된 질문들을 잇달아 던집니다.

전화 연결된 게임산업연합회 한 관계자가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방지를 위해 학부모와 교사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하자 진행자는 “학부모가 들이는 노력만큼 게임 업체가 월급을 줄 건가?”라고 비꼽니다. 통화하던 이는 순간 할 말을 잃습니다.

위의 대화는 게임에 대한 당시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스튜디오에는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임요환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중독자 혹은 잠재적 범죄자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젊은 연령대였던 가수 채리나가 옆에서 임요환을 옹호했죠.

임요환은 프로 선수로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저변에 깔려있는 인식은 얼마큼 바뀌었을까요?

쿠키뉴스 취재진은 부산 광안리에서 임요환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간의 부정적 인식에 대해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뀔 것”이라면서 “앞으로가 기대된다. 든든하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아래는 임요환과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Q. 1세대 프로게이머로서 게임에 대해 안 좋은 인식과 오랜 시간 싸워왔다. 과거 아침 토크 프로그램에서의 인터뷰가 지금까지도 회자가 되고 있다. 지금과 비교해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보는지

=과거에는 아직 검증이 확실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언제 끝날지 몰라 했다. 게임하는 선수들조차 (e스포츠가) 언제까지 갈지 물어보면 ‘어디까지 갑니다. 어떻게 만들 겁니다’ 확실히 얘기하기보다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한 1년 가겠죠’ ‘ 얼마 못 갈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억대 연봉 시대가 열리고 대기업들이 팀을 창단했을 때 자신감이 생겼다. 선수들 연봉도 대단하고 청소년 사이에선 우상이 됐다. 페이커라든지 이런 주류가 되고, e스포츠 쪽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선수들이 모든 청소년들, 10대 20대 중후반까지도 우상이 되고 있다. 

어디에 가서든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무엇을 따져 봐도 흠 잡을 데가 없는 거다. 그런 시대가 왔다. 앞으로는 더 든든하다.

예전에는 e스포츠계에서 스타크래프트가 다른 게임들을 받쳐주는 형식이었다. 지금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스타크래프트를 받쳐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더더욱 좋은 뉴스다.

Q. 보건복지부가 게임을 중독요소로 해석하는 등 오늘날에도 부정적인 시선이 만연하다. 이에 따라 e스포츠에 대한 투자 감소나 스타크래프트 게임단 해체와 같은 아픔이 있었다

=기성세대가 아직 게임을 안 해보고 이 문화를 체험해보지 않은 세대가 많기 때문이다. 제가 선수생활을 할 때 1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까지 그런 분들이 게임을 좋아해줬는데, 그 때 당시 힘을 쥐고 있는 50-60대 분들은 그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을 안 해 봤을 거다. 

그 아래에 있던 분들이 어딘가의 장이 된다든가 하면 인식은 자연히 해결된다. 게임하는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모든 부분이 바뀐다는 게 이런 거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게임왕국에 왔는데 게임이 좋아서 게임이 중독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어두운 부분의 일면일 뿐이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밝은 부분을, 좋은 부분을 헐뜯을 순 없는 거다. 자연히 바뀐다.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려고 했다.

Q. 우리나라에서 ‘임요환’은 e스포츠 그 자체였다. 이에 대해 자부심이 있을 것 같은데

=2000년 초반에 억대 연봉을 받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와-와-’ 거리며 직업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장작불처럼 활활 타다가 바로 꺼질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최근에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선수들 연봉을 들어 보니 억 단위가 아니라 몇 십억 단위더라. ‘아, 올바르게 잘 컸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떤 스포츠든 잘 안 되면 인생들이 힘들어지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아서 시작하는 거다. 몇 십 억 단위의 성공 케이스를 보면서 프로게이머가 하나의 직업군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구나란 생각을 한다.

억대 연봉을 뚫은 초창기 멤버 중 하나로서 정말 뿌듯하다.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자식처럼 무한히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선수들의 몸값이나 연봉, 이런 부분이 하나하나 다 따뜻하게 돼서 시장이 잘 형성되어가고 있으면 뿌듯한 거다.

Q. e스포츠가 e를 뗀 스포츠화가 가능하다고 보는지

=그건 제가 처음 게이머를 하면서 꿈 꿨던 거다. 올림픽의 한 종목으로 e스포츠가 자리매김 하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었다.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e스포츠가 스포츠협회(대한체육회)에 들어가는 것이 지체되고 있다.(편집자주: 한국e스포츠협회는 박근혜 정권 때 준가맹이 취소됐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인정받고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항상 늦게 움직이는 게 있다.

보수적인 부분이 있어서 검증을 하고 진행을 하려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e스포츠가 퍼져 나갔지만 다른 나라에선 이미 스포츠로 정착되고 있다.

결국 시간문제다. e스포츠를 좋아했던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결해 줄 문제다.

Q. 박정석, 최연성, 최우범 등 현역 시절을 함께한 이들이 현재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도 SKT에서 감독으로 1년 정도 했었다. 선수가 지도자의 길을 택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다. 하지만 그 만큼 그 문은 좁아진다. 선수는 많은데 코치는 한 팀에서 1~3명 정도기 때문이다. 

초창기부터 했던 선수들이 감독이 되어서 프로적인 마인드를 선수들에게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스포츠 같다. 스포츠 같이 느껴진다. 그 외에도 수많은 직업들이 (e스포츠에서) 창출되고 있다. 

게임 방송자키(BJ)도 있다. 세계 어딜 가도 많지 않다.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직업도 잘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잘 되고 있는 BJ는 엄청나게 많이 번다고 들었다. 단순히 게임을 해서 그 뒤에 뭘 할거냐는 질문에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요것도 할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Q. e스포츠계에 다시 발을 디딜 의향은 없는지

=제 마음은 항상 e스포츠와 같이 있다. 한 발 물러나서 지켜볼 뿐이다. 우스갯소리로 시니어까진 아니지만 세미 시니어 리그,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같은 선수는 너무 잘하고 어리니깐 재껴두고 윤열이 정도부터 해서 세미 시니어 리그 같은 거 하면 현역까진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여러분께 전략을, 게임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니깐…

Q. 박지성이 맨체스터 엠버서더로 활동하듯이 상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징적인 활동을 하려면 후배 프로게이머들이 잘 해줘서 그런 시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제가 상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저도 가정이 생겼고 앞가림을 하기 바쁘다. 저도 제 직업이 있고 새로운 분야에서 개척을 하고 있다.

그걸 하면서 여유가 될 때는 항상 이 쪽을 돌아볼 거다. 기회가 있으면 능력이 된다면 겸업을 하는 꿈을 꾸고 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배들이 노력을 해주면 그런 날이 더 빨리 올 수 있다. 후배들을 응원한다.

Q. e스포츠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앞서 얘기했던 올림픽 이슈부터, 부정적인 인식, 중독. 이 모든 건 이제 후배들의 몫이다. 후배들이 얼마나 잘 하냐에 따라서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시장을 더 키워나가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올림픽 문이 열릴 거다. 국가대표가 되어서 코치, 감독이 되어서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재목들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팬들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자기의 몸의 일부분처럼 말이다. 팬이 없는 스포츠는 없다. 그 시장은 죽은 시장이나 마찬가지다. 팬들의 시각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고, 얘기하고, 전략도 짜고 모든 걸 그에 맞춰서 잘 이끌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스포츠는 ‘황금 소’다

e스포츠는 세계적 추세이자, 문화 현상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동시에 누구나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북미와 유럽, 중국에서 거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고 선수들은 일찌감치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습니다.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국내 e스포츠 선수들은 축구, 야구 선수들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연봉은 국내 최대 인기 종목인 프로야구 선수들에 필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획] 임요환에 던져진 질문, 지금은 바뀌었나

이와 별개로 국내 시장 규모나 인식은 여전히 초라합니다. 친(親) 게임정권이 출범해 기대를 받고 있지만, 당장의 인식은 여전히 마이너 내지는 지하세계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시장 규모는 제자리걸음 중이죠.

e스포츠는 황금소입니다. 그러나 황금소를 지키는 외양간 격인 법과 인식은 산적한 문제들에 휩싸여있습니다. 황금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겠습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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