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럽 평정하고 생애 첫 롤드컵 무대 밟는 ‘이그나’ 이동근

기사승인 2017-10-04 05:00:00
- + 인쇄

▶ ‘제2의 매드라이프’에서 유럽 최고 서포터가 되기까지

‘이그나’ 이동근의 첫 등장은 화려했다. 지난 2015년 인크레더블 미라클(현 롱주 게이밍)에 입단한 그는 같은 해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롤챔스) 서머 스플릿 승강전을 통해 데뷔했다. 첫 경기부터 연거푸 하이라이트 필름을 찍어낸 그에겐 곧 ‘제2의 매드라이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간만에 등장한 캐리형 서포터’란 평가를 들으며 탄탄대로를 걷던 이동근은 이듬해 갑작스럽게 유럽 챌린저 시리즈 팀 미스핏츠로 적을 옮겼다. 1부 리그도 아닌 2부 리그 소속 선수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이는 얼마 없었다. 자연스레 이동근은 국내 팬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그로부터 약 1년 반이 흘렀다. 그동안 이동근은 팀의 성적과 자신의 가치를 착실하게 끌어올렸다. 이제 ‘제2의’ ‘간만에 나온’ 같은 수식어가 필요 없어졌다. 대신 유럽 최고 서포터로 진지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유럽 1부 리그 스프링 스플릿 퍼스트 팀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팀을 1부 리그 준우승으로, 그리고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본선으로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 ‘승강전에 강한 롱주 출신’ 무조건 1부 승격 자신

“한국어로 인터뷰하는 건 오랜만이어서 말이 잘 안 나오네요. 휴가 동안엔 게임을 많이 했어요. 리그 오브 레전드부터 배틀 그라운드까지 다양하게요. 고향 광주에 내려가 있었던 만큼 반려견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고요”

이동근의 소속팀 미스핏츠는 롤드컵 본선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에 부트캠프를 차렸다. 막바지 담금질이 한창이던 지난 9월 말 서울 남대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1년 반 가까이 독일에서 지냈던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가 어색해졌다며 웃었다.

이동근은 지난 2016년 6월 미스핏츠에 입단했다. kt 롤스터에서 나온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3개팀에서 동시 오퍼가 왔었어요. 가장 먼저 이야기를 나눈 게 미스핏츠였고요. 마침 친분이 있던 ‘셀피’ 마르친 볼스키가 당시 이 팀 소속이어서 저를 소개해줬어요. 큰 고민 없이 이적을 결심했죠”

당시 미스핏츠는 2부 리그 챌린저스 시리즈 소속이었다. 그러나 이동근은 승격을 자신했다.

“무조건 팀을 1부에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미드라이너 ‘셀피’와 정글러 ‘위즈덤’ 김태완의 기량이라면 무조건 올라갈 것 같았죠. 저 또한 승강전에 강한 롱주 출신이었기에 자신 있었고요”

▶ 유럽에서 성공한 비결? 굳이 꼽으라면 ‘영어’

그가 유럽에서 3번의 시즌을 보내는 동안 미스핏츠는 1부 준우승팀, 롤드컵 진출팀으로 성장했다.

“서머 스플릿 시작 전 목표가 결승 진출이었어요. 남들이 어떻게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팀에 멘탈 클리닉 코치가 계신데 항상 목적의식을 만들어주셔요. 팀 미팅 시간마다 ‘우리의 목표는 롤드컵이다’를 일깨워주신 덕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차니’ 하승찬, ‘카카오’ 이병권 같은 베테랑도 1시즌을 채 넘기지 못하고 떠난 땅이 유럽이다. 이동근도 초반에는 식습관을 비롯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생활 패턴이 한국과 많이 달라요. 밤 8시, 9시만 돼도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요. 음식도 많이 안 맞는 편이에요. 맛이 전체적으로 극단적이거든요. 매우 짜거나 혹은 매우 달거나. 한식당이 있긴 하지만 직접 가서 먹어야 해요”

하지만 그는 지금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선수 중 하나다.

“비결은 딱히 없는 거 같아요. 그래도 한 가지를 꼽으라면 영어요. 저는 사실 지금도 영어를 잘하지 못해요. 그래도 거리낌 없이 자신 있게 팀원들과 영어 대화를 시도하는 편이에요. 실력이 꾸준히 늘고 있어요”

이동근은 팀 동료 ‘셀피’ 때문에 영어가 늘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있을 때부터 ‘셀피’와 스카이프로 의사소통하면서 게임을 했어요. 어느 순간 제가 영어를 못한다는 게 창피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혼자 단어장도 뒤져보고, 문장도 고쳐가면서 독학으로 기초를 다졌어요. 실제 영어가 는 건 미스핏츠에 온 다음부터였지만요”

▶ 롤드컵 조별 예선, 초반 싸움이 승패 좌우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조추첨 결과 미스핏츠는 D조에 편성됐다. 스프링·서머 프로피를 연달아 들어올리면서 각 지역 최강자 위치를 공고히 한 플래시 울브즈와 팀 솔로미드(TSM)가 한 배를 탔다.

“플래시 울브즈와 팀 솔로미드, 둘 다 이길 만한 팀인 것 같아요. D조는 아마 서로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물론 8강에 올라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래도 꼴등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다소 엄살 섞인 전망을 내놓은 이동근이었지만 현 전력을 냉철하게 분석하기도 했다.

“플래시 울브즈는 정글러 ‘카사’ 훙 하오슈안이 공격적이에요. 초반에 승기를 잡는다면 이길 확률이 높아지겠죠. TSM전은 잘 모르겠네요. 미드라이너 ‘비역슨’ 쇠렌 비에르그가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콘셉트를 바꾸는 능력이 뛰어나고 센스도 좋아요. 정글러 ‘스벤스케런’ 데니스 욘슨과 호흡도 잘 맞아요”

이번 롤드컵은 7.18 패치버전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그랩류 서포터를 잘 다루기로 정평이 난 그 또한 이번 롤드컵에선 ‘향로 오브 레전드’가 펼쳐질 거라 전망했다.

“개인적으로 ‘불타는 향로’를 안 쓰면서 메타를 파훼해보려 했어요. 블리츠크랭크, 쓰레쉬 등 그랩류 챔피언에 자신이 있는 편이기도 해서요. 그런데 ‘향로는 향로’예요. 향로 서포터를 고르면 서포터 입장에서 게임을 하기가 편해요. 후반 압박감은 덜한데 초반 라인전이 그렇게 약한 것도 아니죠. 향로를 쓸 상황이 안 쓸 상황보다 많은 것 같아요. 향로가 없어서 지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 팀 동료 ‘파워오브이블’, 내셔의 이빨에 홀려있어

이번 롤드컵에서 유럽을 대표할 3팀은 G2 e스포츠, 프나틱 그리고 미스핏츠다.

‘유럽 패왕’ G2는 이제 한국 팬에게도 친숙한 팀이다. 수차례 얼굴을 비춘 프나틱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스핏츠는 아니다. 미드라이너 ‘파워오브이블’ 트리스탄 슈라게 정도를 제외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이동근과 함께 롤드컵 대장정을 떠나는 동료들은 어떤 선수들일까. 그에게 엄격한 평가를 요구했다.

“탑라이너 ‘알파리’ 바니 모리스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라인전이 센 편이에요. 그리고 말을 잘해요”

이동근은 쉴 새 없이 팀원과 의사소통하며 오더에 참여하는 선수를 두고 “말을 잘한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어구를 정글러 ‘맥스로어’에 대해 설명할 때도 사용했다.

“‘맥스로어’ 누바 사라피안, 그 친구도 말을 잘해요. 그리고 머리가 정말 똑똑해요. 너무 똑똑하기 때문인지 그 부작용으로 살짝 예민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요. 저희 팀은 탑·정글 호흡이 정말 좋아요. 두 선수가 전에도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춰봤거든요. 둘이 사적으로도 친하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고 있어요”

“미드라이너 ‘파워오브이블’ 트리스탄 슈라게는 멘탈이 좋아요. 유럽 미드라이너들이 전체적으로 라인전이 센데 이 친구도 라인전을 정말 잘해요. 너무 센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이동근은 ‘파워오브이블’의 과도한 ‘내셔의 이빨’ 사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파워오브이블’은 전 세계에서 내셔의 이빨을 가장 선호하는 미드라이너다.

“그 친구는 내셔가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마치 신앙처럼 홀려있어요. 오리아나로도 내셔를 가고, 럭스로도 가고, 트위스티드 페이트로도 가요. 팀 차원에서 피드백이요? 물론 여러 차례 나왔죠. 그런데 어째서 내셔가 좋은지를 너무나 잘 설명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냥 쓰게 두기로 했어요”

바텀 파트너 ‘한스사마’ 리브 스테벤에 대해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한스사마’는 오랫동안 같이 합을 맞춰왔기 때문에 친한 선수에요. 플레이 스타일도, 지향점도, 생각하는 것도 서로 비슷해졌죠. 저는 ’한스사마‘가 프나틱 ’레클리스‘ 마르틴 라르손, G2 '즈벤’ 예스퍼 스벤닝센과 함께 유럽 탑3 원거리 딜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평가하자면, 전 자잘한 실수를 줄이고 싶어요. 실수했을 때 ‘내가 왜 그랬지’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요. 실수 없이 꼼꼼하게 플레이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 유럽 평정하고 생애 첫 롤드컵 무대 밟는 ‘이그나’ 이동근

▶ 시즌 종료 후 다양한 팀과 대화하고 싶어

“롤드컵 8강에 진출하면 좋겠지만, 설령 예선에서 탈락하더라도 ‘엄청 못하는 팀은 아니었다’는 평을 듣고 싶어요. 시즌 종료 후요? 생각은 해봤죠. 일단 롤드컵이 끝나면 매해 그렇듯 혼돈의 시기가 오잖아요. 재밌을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는 그런 시기가요. 저는 만약 미스핏츠에 남더라도 여러 팀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그는 프로 데뷔 후 단 한 번도 다양한 팀과 협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보통 자유 계약 신분이 되면 ‘팀을 구하니 연락해주세요’ 공지도 하잖아요. 그런 게 궁금해요. 전 한 번도 공개구직을 해본 적 없거든요. 미스핏츠에 올 때 ‘셀피’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사실상 혼자 팀을 찾았어요. 심지어 계약서도 혼자 썼죠”

그는 한국 복귀도 고려하고 있었다.

“미스핏츠가 제게 재계약을 제의하더라도, 다른 팀과 대화는 해보고 싶어요. 물론 한국도 가고 싶죠. 한국 복귀는 항상 생각하는 편이에요. 기억에 남는 팬들도 계시고, 몇몇 분들은 지금까지도 응원을 해주시거든요. 상황과 여건이 맞을 때 돌아가고 싶어요. 우선 이번 롤드컵에서는 재밌는 경기 보여드릴 수 있도록, ‘비빌 수 있도록’ 노력할 게요.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민섭 기자 yoonminseop@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