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환자들의 주치의, ‘호스피탈리스트’를 아시나요

기사승인 2017-10-13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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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36)씨는 종종 병원에 입원했다. 내과, 외과를 가리지 않았다. 최근에도 병원신세를 졌다. 그리고 입원할 때면 답답함을 느끼고 짜증이 난다고 토로했다. 통원치료 때는 담당교수를 보고 질문이라도 할 수 있지만, 입원을 하면 새벽시간 회진 때를 놓치면 하루 종일 교수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만날 기회가 없으니 치료경과는 어떤지, 꾸준히 먹던 약은 복용해도 되는지 묻기도 어렵다. 담당전공의가 있다지만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입원 중 타과 진료를 봐야하는 상황이라도 생기면 복잡한 절차와 하염없는 기다림에 차라리 당일 외래진료를 접수하는 편이 속 편하겠다는 말까지 한다.

왜 A씨 같은 일이 생길까. A씨가 표현하는 감정이 혼자만 느끼는 것일까. 여기 또 다른 사례가 있다.

#2. B(65)씨는 골수형성이상증후군에 따른 백혈병으로 흔히 말하는 빅5 병원 중 한 곳에 입원했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담당교수는 건강상태와 체력 등이 연령에 비해 좋다며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마치고 회복 중 B씨는 사망했다. 병명은 패혈증이었다.

환자 보호자는 새벽녘 패혈증 초기 증상인 설사가 시작됐고, 이후 8시간 동안 생체리듬을 체크하러 온 간호사에게 수차례 이상유무의 확인을 요청했지만 담당의사는커녕 전공의조차 나타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입원환자들의 주치의, ‘호스피탈리스트’를 아시나요
A와 B씨 사례처럼 전문가들은 많은 수의 입원환자가 회진시간을 놓쳤거나 긴급한 상황 혹은 복합질환에 따른 진료의뢰를 하기 위해 담당 간호사와 의사를 찾아다니는 의료공백현상을 경험한다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담당교수가 1일 1회진 외에 입원환자를 직접 관리하기가 어려워 전공의가 대신 진료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전공의 특별법이라는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 시행과 진료과별 전공의 수급문제로 인력공백이 발생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지난해 6월 3일, 입원환자의 안전을 강화하고 의료기관 인력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원기간 동안 진찰부터 경과관찰, 상담, 퇴원계획 수립 등 입원환자의 치료 전반을 주치의처럼 직접 담당하는 전문의를 두도록 하는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시사했다.

이어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 대상기관을 공모해 31개 기관을 선정하고, 일반 입원보다 건강보험 수가가 높은 중환자실 관리료에 준하는 수가를 반영한 사업을 2016년 7월 1일부터 시행,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미국 등 입원전담전문의를 도입한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재원기간과 재입원이 감소하는 등 의료의 질이 향상되고,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이 줄어드는 등 입원환자의 안전이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3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15곳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조차 6개 참여기관을 금년 2월 추가로 모집한 결과다. 입원전담전문의를 하려는 인력을 찾지 못해서다. 왜 의사들은 환자의 건강과 안전이 좋아진다는 제도에 참여하지 않을까.

◇ 인하대병원의 도전적 해법… ‘입원의학과’

의료현장에서는 중환자전담의보다 업무가 과중함에도 역할은 전공의와 큰 차이가 없고, 교수의 지위를 갖춘 전문의지만 세부전공과 전문의보다 위상이나 대우가 낮아 지원하려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답한다.

더구나 외래에서부터 정해진 담당 주치의와 입원전담전문의 간의 처방권 및 의사결정권한의 충돌, 그로 인한 외래 의사들과의 관계 악화, 업무와 역할의 전문성에 대한 우려,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소속감 결여 등도 문제로 거론한다.


이 가운데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 초기부터 참여해 현재 외과와 내과 병동 중 일부에 호스피탈리스트를 기용하고 있는 인하대학교병원이 고착화된 인력수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에 나섰다.

‘입원진료를 혁신한다’라는 목표를 내건 입원의학과를 만들어 ▶진료의 독립성과 신분 보장 ▶고용 안정 및 전문성 제고 ▶기존 진료 분야와의 연계 및 다학제적 접근 강화를 꾀해 의사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인력수급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인 것.

실제 중환자전담전문의와 간호사들로 구성된 신속대응팀(INHART), 내과계와 외과계 전문의인 입원전담전문의를 구성원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전문과인 ‘입원의학과’를 신설하고, 입원환자에게 포괄적이고 연속적인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호흡기, 심장, 소화기, 외과, 산부인과 전문의들로 구성된 중환자전담전문의와 입원전담전문의가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다방면의 문제를 안고 있는 환자들의 정보를 유기적으로 공유하고, 신속대응팀과 연계해 즉각적이며 통합적인 진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조재화 입원의학과장은 “병원 내 독립된 진료과라는 울타리를 제공해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갖도록 함으로써 환자중심의 진료와 보다 높은 의료서비스 질,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합진료체계”라고 강조했다.

김강립 보건의료정책실장 또한 최근 “호스피탈리스트의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입원의학과’를 신설한 것은 고무적인 행보”라며 “입원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제고를 위해 필요한 제도인 만큼 정책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뜻을 전했다.

이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1년으로 예정됐던 시범사업 기한을 무기한 연장하고, 사업에 참여한 15곳의 운영성과를 살펴보기 위한 중간성과평가에 들어갔다. 아울러 지난 9월 15일 기존 시범사업 수가를 평균 40% 인상했다.

한편, 한 외과 교수는 “전공의 시절 힘들고 고단한 업무여건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환자들에 대한 일말의 부채감을 가져 호스피탈리스트의 길을 선택했다”며 “아직은 부족하다. 수가를 비롯해 전폭적인 정부와 병원의 지원, 주변의 이해와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입원의학과가 사업의 제도화와 정착, 의료진의 인식을 개선할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의학회에서 과를 독립된 하나의 진료과목으로 인정해 전문성을 부여한다면 제도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사업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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