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죽이든 살리든…억울함만 없었으면” 철원 총기사고 구속 소대장父

기사승인 2017-11-0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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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강원도 철원 육군 6사단 소속 고(故) 이모(22) 상병은 진지 공사를 마친 뒤 사격장 뒤편 전술 도로로 복귀하던 중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같은 날 오후 5시22분 끝내 사망했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이 상병이 인근 사격장에서 발사된 도비탄(발사된 탄이 돌이나 나무 등 지형·지물과 충돌해 예상외의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에 맞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의문이 빗발쳤다. 군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특별조사를 실시, 사인은 도비탄이 아닌 유탄이라고 말을 바꿨다. 유탄은 조준한 곳에 맞지 않고 빗나간 탄을 말한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9일 "사고는 병력인솔부대, 사격훈련부대, 사격장관리부대의 안전조치 및 사격통제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스스로 '총체적 과실'을 인정한 셈이다. 황당한 사격장 구조, 부실한 안전 대책 등 사실상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그러나 이후 군은 사건 책임을 일선 부대 초급 간부에게 전가했다. 지난 12일 군사법원은 사고 발생 당시 병력을 인솔했던 박모(24) 소대장(소위)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반면 인근 사격장에서 훈련통제에 실패해 총기사고를 유발한 사격훈련통제관 최모 중대장(대위), 병력 인솔에 참여했던 김모 부소대장(중사)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지난 29일 박 소대장의 구속영장적부심사가 열렸다. 군사 법원은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며 기각했다. 지난 31일 서울 마포구 쿠키뉴스 사옥에서 박 소대장의 아버지 박수홍(56)씨를 만났다. 직장을 그만둔 박씨는 매일 아들 면회를 가고 있다.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어떤 점이 억울한가.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9일 '인솔책임자들은 철원군 동송읍 금학산 아래 전술 도로에서 사격 총성을 들었지만, 이동을 중지하거나 우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언론에서도 총성이 들렸는데도 아들이 강행해서 전술 도로로 이동한 것처럼 보도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들과 부소대장 말에 따르면 진지 부대 공사를 마치고 전술 도로까지 이동하는 중에는 총성이 있었다. 그러나 전술 도로 초입에서 경계병을 만나기 전에는 분명 총성이 멈췄었다. 

대열 맨 앞에 있던 아들이 전술 도로 초입 경계병 2명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후미 경계병 2명과 인사하고 지나갈 때까지도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대열 맨 마지막에 서 있던 부소대장이 250여m를 걸어가고 난 뒤에서야 총소리가 났다. 전술 도로 한복판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부소대장과 통화했는데 총성이 나자 '엎드려!'라고 외쳤다고 한다. 3개월 전 자대배치 된 아들은 이 상병이 쓰러지자 위험을 무릅쓰고 사로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사격을 중지하라고 소리쳤다.

게다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크게 듣느라 총성을 못 들었다느니 이런 보도들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 부대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면서 간 건 맞다. 그런데 다른 선임들도 그렇게 했었다. 또 음악 소리에 총성이 묻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 추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것인가.

"탄이 날아온 게 사격훈련 도중이었는지, 끝난 뒤였는지는 명확히 밝혀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진지 공사를 마친 시간은 오후 3시30분이다. 통상적으로 사격 훈련이 끝난 시간이었다. 사격이 이뤄지는 도중이었다면 6분, 7분 동안 총성이 들리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군대에서는 사격이 다 끝난 뒤, 남는 실탄을 난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과정에서 이 상병이 유탄을 맞은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지난 2015년부터 전투사격 방식이 바뀌었다"며 "입사호 밖에서 쏘는 15발 중 마지막 6발은 연발 사격을 하게 되어 있어 잔탄 소비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단독] “죽이든 살리든…억울함만 없었으면” 철원 총기사고 구속 소대장父
-지난 주말 유가족을 만났다고 들었다. 

"사고 발생 당일부터 만나야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만류했다. 그러다 지난 29일 피해자 부모가 사는 곳에 찾아갔다. 현관문을 두드리니 누구시냐고 해서 박 소대장 아빠라고 했다. 잘못 찾아오신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관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울었다. 그제야 피해자 부모와 만나 얘기를 나눴다. 피해자 부모께서는 더는 사건을 떠올리기도 싫고 모두 잊고 싶다, 아들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용서해달라는 게 아니다. 근데 나도 아들을 키우는 처지다 보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씀드렸다. 피해자 부모는 '그 마음 압니다, 아들 위해서 뭐든지 하십시오. 재판이 힘들 겁니다'라고 말해주셨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한강에 뛰어내려 죽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다 내가 잘못해서 아들이 벌을 받는 것 같다."

-지금까지 철원 총기사고로 구속된 사람은 박 소대장뿐이다. 

"지난 29일 구속영장적부심사가 있었는데 증거인멸, 도주 우려로 구속 사유가 인정됐다. 반면 인근 사격장에서 훈련 통제에 실패, 총기사고를 유발한 사격훈련 부대 중대장과 병력인솔에 참여했던 중사는 구속되지 않았다.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고 혐의를 소명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작 증거인멸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위급 간부 아닌가.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한 아들은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죄책감도 느끼고 있다. 

바라는 건 없다. 죽이든 살리든. 아들은 나라의 것이니까 나라가 알아서 하는 게 맞다. 아들 군대 보내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죄를 용서해달라는 게 아니다. 잘못했으니까 벌은 달게 받을 거다. 그런데 일단 억울한 점은 없어야 하지 않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힘들다. '덤터기 씌우기', '꼬리 자르기'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사진=심유철 기자 tladbcjf@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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