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연애의 목적’은 직장 내 성폭행 영화였나

‘연애의 목적’은 직장 내 성폭행 영화였나

기사승인 2017-11-07 1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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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연애의 목적’은 직장 내 성폭행 영화였나

최근 직장 내 성폭행 사건이 잇따라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한샘 성폭행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도 7일 현대카드 성폭행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며 사내 성폭행 사건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죠. 하나의 개별 사건이 아닌 어느 직장의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보편적인 사건으로 직장 내 성폭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분위기입니다.

이번엔 2005년 개봉된 영화 ‘연애의 목적’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영화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은 영화지만, 결국 직장 내 성폭행을 연애 과정의 일부로 다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연애의 목적’ 논란은 SNS에서 시작됐습니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지난 4일 자신의 SNS에 “연애의 목적이 개봉됐을 때 직장 성폭행에 대한 영화라는 걸 부인하려는 사람이 많아 신기했다”며 “이 영화를 어떻게 보건 그걸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가지 않나”라고 적었습니다. 이에 다수의 네티즌들이 댓글을 달며 논란이 촉발된 것이죠.

‘연애의 목적’은 고등학교 영어교사 유림(박해일)과 미술교생 홍(강혜정)의 발칙한 연애담을 그린 영화입니다. 교생으로 들어온 홍이 마음에 든 유림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연애하자는 요구를 합니다. 유림에겐 6년 사귄 여자친구가, 홍에겐 1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 데도 말이죠. 단둘이 갖게 된 술자리에서 유림은 “사실 연애가 아니라 자고 싶다”는 요구까지 합니다. 이에 진저리가 난 홍은 “50만원을 주면 자 주겠다”며 받아치기도 하죠.

영화에서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연인과 헤어지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며 끝납니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에도 그것을 연애 과정의 하나로 해석한 것이죠. 홍이 연애나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이후에도 집요하게 수작을 거는 유림의 행동은 성추행으로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해도,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영화가 개봉한 당시에도 한 영화 매거진에서 ’강간이다 vs 연애의 시작이다’라는 온라인 토론을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연애의 목적’은 관객수 173만5977명을 동원했습니다. 지금처럼 1000만 영화가 등장하는 시대가 아니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관객수입니다. 국내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도 일곱 개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시나리오상을 탔고, 대종상에서는 신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는 최우수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하기까지 했죠.

‘연애의 목적’이 개봉한 지 12년이 흘렀습니다. 2017년 국민들에게 지탄받고 있는 사내 성폭행 사건과 비슷한 이야기가 2005년에는 큰 문제의식 없이 넘어갔을 뿐 아니라 극찬 받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합니다. 그만큼 지금까지 직장 내 성추행·성폭행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꾹 참았거나, 타의에 의해 묻힌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도 되지 않네요. ‘연애의 목적’을 제작한 감독과 배우들은 지금의 한샘·현대카드 성폭행 사건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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