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칼럼] 확률형아이템의 범주

기사승인 2017-11-09 0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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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칼럼] 확률형아이템의 범주

2013년 뉴욕 시장 불룸버그는 탄산음료 판매 규제법을 시행하려 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시민들의 비만과 급격한 당뇨병 증가 원인이 당분이 많이 들어간 탄산음료가 주범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탄산음료를 적게 마시도록 하는 방법으로 큰 사이즈의 음료 판매를 식당과 극장에서 금지하려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법률시행을 예고했더니 예상지 못한 곳에서 들고 일어났다. 저소득층 히스패닉이나 흑인이 백인보다 비만인구 비율이 높은데, 오히려 이들이 반발한 것이다. 저소득층들은 식당에서 큰 사이즈의 음료를 사 먹는 것이 더 절약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탄산음료는 건강의 범주가 아니라 생존의 범주였다. 심지어 큰 용량의 음료 사재기현상까지 일어났다. 또 건강에 해로운 술은 크기나 용량에 제한 없이 판매하면서 이보다 덜 해로운 탄산음료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겠다는 것도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법원에서도 과도한 규제라는 판결이 나오며 결국 헤프닝으로 끝난 사건이다.

잊고 지냈던 이 헤프닝이 떠오른 것은 국정감사에서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된 비판기사를 보고나서다. ‘확률형 아이템’은 사행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규제가 적용되어만 하는 병적 도박(Pathological Gambling)은 아니라고 심리학자로서 나는 확신한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많은 돈을 사용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집을 저당잡히고 가족들의 생계가 파산되는 병적 도박과 같은 파멸적인 일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ESRB(Entertainment Software Rating Board)와 같은 국제게임등급기관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이 아니라고 발표한 바 있다. 결과물이 게임 상에서만 가치를 가지고, 가치가 낮기는 하지만 상응하는 결과물이 늘 제공된다는 점이 도박과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부 게이머들과 국회의원들은 돈이 많이 들어가고, 뽑기라는 형태가 유사하다하여 도박이라는 범주로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접근하는 듯하다. 그 처방으로 강력한 규제가 제시된다. 이런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처방은 오히려 병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게임계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굴지의 N사들만 사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거의 모든 게임업체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현행 비즈니스모델에 규제라는 충격을 주면 N사들은 풍부한 인력과 자금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영세한 중소게임사들은 절멸을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어려운 게임시장환경을 고려하면 이런 규제는 중소개발사에 ‘셧다운제’보다 더 치명상을 줄 가능성이 높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은 물론 미국 게임에도 발견되는 게임의 한 요소다. 특히 캐릭터를 육성하고 여러 플레어들이 어울리는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에서 주로 등장하는 요소다. 이러한 요소를 세계 표준화하여 제한한다면 모르겠으나, 국내 게임만 제한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형평성 붕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글로벌원빌드를 추구하는 현행 게임비즈니스 현실에서 경쟁력 있는 국내 게임사들의 팔을 비틀어버리는 자해적인 처사다. 

이용자들의 원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의 범주는 규제가 필요한 도박이 아니라 개선이 필요한 게임비즈니스 모델이다. 자칫 잘못된 접근으로 국내 중소게임사를 절멸시키고, 국내 게임업계의 경쟁력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게이머와 업계 그리고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논의기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가능한 빠르게 말이다.

글=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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