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외박에 굶주림 강요하는 공무원 채용면접

지방출신 국가직 응시자 홀대하는 인사혁신처… “어쩔 수 없다”

기사승인 2017-11-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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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며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을 뛰쳐나와 7급 혹은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부터 준비를 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국내외 정세 및 경기 불안으로 채용시장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해마다 늘고 있는 신규 채용에 더해 공무원 17만 4000명을 채용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이 이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련의 공무원 채용규모 증가를 인사혁신처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응시자들 사이에서 지난 11월 9일과 10일 양일간 진행된 국가공무원 7급 공개경쟁채용 면접시험은 한마디로 ‘갑질’의 극한이었다는 평이다. 


◇ 면접비 주는 기업 vs 숙박비에 도시락까지 강요하는 정부

500명의 1차 합격자들은 오전 8시30분까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KINTEX) 제2전시장에 꾸려진 면접장으로 집결해야했다. 단순 이동시간만 계산해도 부산역이나 목포역에서 면접장까지 KTX를 타고 4시간가량이 걸린다. 고속버스로 이동하면 약 6시간이 소요된다. 

대구나 광주에서 출발하면 KTX를 탈 경우 3시간, 고속버스로는 5시간 정도를 이동에 써야한다. 그나마 대전이면 2시간30분에서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사실상 불가능한 가정이다. 대전에 거주하는 이들조차 사실상 입실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결국 수도권에서 새벽시간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을 제외한 많은 수의 지방 출발 응시자들은 킨텍스나 일산 근방에서의 ‘외박’이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낯선 환경에서 면접 전날 밤을 보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응시자들은 면접장 입실 후 자신의 면접이 끝나기 전까지 면접장인 제2전시장을 나올 수 없다. 점심식사도 면접장 내에서 해결해야한다. 식당이나 편의점 등은 당연히 없다. 입실 전 가져온 음식물만을 섭취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응시자들은 샌드위치나 김밥 등 휴대가 편하고 쉽게 상하지 않는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점심을 때운 이들이라면 다행이다. 그저 음료나 간단한 에너지바 등으로 허기를 달래는 응시자들도 다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연하지만 지방에서 올라와 하루 밤을 보낸 이들이 입실시간 전 도시락은커녕 하다못해 김밥 한 줄, 햄버거 하나라도 살 수 있는 식당이나 분식점, 패스트푸드점을 킨텍스 주변에서 찾기는 사실상 어렵다. 심지어 주변을 찾아 헤매도 해당 시간에 문을 여는 곳은 실제 거의 없다.

이와 관련 9일 면접시험을 치기위해 8일 상경한 응시자 A씨는 “인생을 건 응시자에 대한 배려는 1도 없었다”면서 “민간기업들은 교통비조로 면접비를 응시자에게 주는데 공무원 시험은 응시료를 내고도 숙박비에 굶주림까지 강요받았다”고 비난했다.


◇ “블라인드 면접이라더니”… 지방 홀대에 차별의혹까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사혁신처는 ‘공정하고 엄정한 면접시험 집행’이라는 목표아래 학연이나 지연 등을 배제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마련했지만 완전히 없애는 데는 실패했다. 응시자에게 부여된 수험번호에는 지역구분이 드러났고, 수험번호 배정과 면접순서 배정에도 지방에 대한 홀대가 그대로 반영됐다.

인사혁신처가 부여한 수험번호 구성을 확인한 결과 총 8자리 중 앞 3자리는 직렬을, 가운데 2자리는 지역을, 뒷 3자리는 응시자 구분을 위한 임의숫자로 채워졌다. 그리고 수험번호는 면접위원들에게 그대로 제공됐다. 면접위원들이 응시자의 출신지역을 유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여기에 면접순서조차 지방에서 올라온 응시자들을 힘들게 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응시자들은 수험번호가 빠른 순서대로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결과 앞 번호를 부여받은 서울지역 면접대상자들부터 수도권, 지방 순으로 면접을 보게 됐고, 말미로 배정된 이들은 KTX 행신역으로 저녁도 거른 채 달리거나 서울역 혹은 용산역을 거쳐 귀가해야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응시자 B씨는 “집에 도착하니 오후 11시를 넘겼다”며 “집이 가까운 수도권은 먼저 면접을 본 후 해를 보며 귀가하는데 집이 먼 지방출신들은 달을 보며 귀가하는 상황은 조금 불합리한 것 같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처럼 불합리함과 의혹이 불거진 면접시험을 두고 인사혁신처는 “어쩔 수 없었다. 추후 문제를 좀 더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공무원 신규채용 인원이 늘고 연간 채용계획은 정해져 있어 개별 시험일정은 단축되는 상황이기에 하루에 봐야하는 면접자 수가 많아져 인원을 수용할 장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추가적인 예산과 인력 편성 전까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해명이다.

실제 인사혁신처 공무원채용 관계자는 “시험에 앞서 여러 장소를 알아봤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500명의 인원이 한 번에 면접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없어 (일산 킨텍스로) 정하게 됐다. 더구나 제도가 바뀌며 하루 종일 칠 수 밖에 없어 적합한 장소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점식식사와 관련해서도 “통제가 어려워 문제유출 등 사고가 생길 수 있어 외부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점심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응시료 7000원을 받아 필기시험 운영에만 대부분의 비용이 소요된다. (장소나 점심 문제에 대해) 추후 좀 더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지역에 따른 수험번호 부여로 인한 면접순서 및 면접상 불이익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면접위원들에게 수험번호 상 지역 배분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 지역적 편견이 작용하진 않았을 것이며 내년부터는 방식이나 장소 등을 바꾸려고 검토하는 중”이라고 일축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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