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사업주 된 의료기관들, 까닭은?

“통상임금이 뭐 길래”… 덮어놓고 칼 휘두른 고용노동부

기사승인 2017-11-21 09: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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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법당국의 통상임금에 대한 판결이 산업계를 흔들고 있다. 그리고 판결의 여파는 의료기관으로도 번지고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는 기아자동차의 정기적 상여금과 중식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2부도 지난 8일 한라그룹 만도가 짝수달에 지급해온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판단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기업은 상여금 등을 산입한 임금을 바탕으로 휴일·야근수당 등을 재산정해 차액을 지급해야한다. 지급방식 등 세부사항은 노사 간 합의에 의해 조정할 수 있지만 지급지연에 따른 이자도 부담해야한다. 체불임금으로 분류돼 최대 3년까지 소급적용도 가능하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일련의 판례를 인용해 일부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사에 들어갔고, 한양대의료원, 인제대 상계백병원에 대한 통상임금 책정방식 문제를 지적, 시간외 근로수당 재산정에 따른 미지급임금에 대한 지급명령을 내렸다. 

책정된 체불임금은 한양대의료원 21억원, 상계백병원 19억원으로 1년치를 소급해 정기적으로 지급된 상여금을 기본급에 환산해 산출된 시간외 수당 미지급 금액이다. 이와 관련 한양대의료원과 상계백병원은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다.

성심의료재단 산하 강동성심병원의 경우에는 고용부가 근로감독을 시행, 통상임금 산정 등 유사한 사항들로 지난 3년간 240억원의 임금을 체불했다고 보고 서울동부지검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여기에 고용부는 최근 간호사를 선정적인 장기자랑에 강제동원하거나 근로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파악된 학교법인일송학원 한림대 재단 산하 성심병원 5곳(성심, 한강, 강남, 춘천, 동탄)도 강동성심병원과 함께 사업장 근로감독이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고용부 관계자는 “한양대의료원과 인제대백병원의 경우 통상임금 산정에 관한 정기감독 계획에 따라 근로감독이 이뤄졌고 문제가 확인된 것이지만 성심병원의 경우 인권침해 문제와 열악한 근로환경 등이 국회에서 거론돼 감독에 착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악덕사업주 된 의료기관들, 까닭은?
문제는 이들 의료기관이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수련 간호사 임금문제 등이 불거진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병원계 전반에 걸친 근로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내부검토를 거쳐 근로감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는 “의료기관에 대한 계획을 잡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벙원 업종에서의 문제점이 국회 등에 거론되며 근로문제나 환경에 대한 열악함을 일부 인식하고 있다”며 “추후 논의를 거쳐 통상임금 등 유사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근로감독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 병원 관계자는 “사실상 병원은 물론 기업 대다수가 통상임금 산정문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아무런 안내나 공지 없이 감독 후 미지급금을 만들어 임금체불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심지어 소급적용해 사측의 부담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판례 등에 따라 관례가 잘못됐다는 사회적 혹은 법적 판단이 내려지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임금체계를 개선하라는 지시를 내린 후 미이행시 벌금이나 행정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법 집행이라는 지적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왜 빅5나 대형병원처럼 많은 인력이 근무하는 병원이 아닌 한양대나 인제대만이 정기 감독에 포함됐는지도 의문”이라며 “대표적인 기관들에 대한 감독을 통해 기준을 세우고 관심을 높여 기타 기관들이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근로감독 대상선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연초 장시간 근로감독, 통상임금 책정 등 법 위반이 우려되는 분야에 대해 1년계획을 세워 감독목록을 별도로 정해 진행한다”며 “일정이나 대상은 논의를 통해 결정하고, 감독을 나가 법 위반사항에 대해 시정지시를 할 뿐”이라고 답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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