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정의 뿌리 내리도록 미력 다하겠다"

기사승인 2017-11-22 10: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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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0기)는 22일 "법률가는 정의를 먹고 산다"며 "이 땅에 정의가 뿌리내리도록 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진행된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2년 전 '법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특강할 때 법률가는 정의를 먹고 산다고 강조한 바 있다"며 "앞으로 생각에 생각을 더해 제 모자람을 줄이고 이 땅에 정의가 더욱 뿌리내리도록 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또 "많은 것이 모자란 제가 헌재소장의 막중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면서도 감히 이 자리에 선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헌법수호를 사명으로 하는 헌법재판소가 하루빨리 조직적 완전성을 갖추라는 시대적 요청과 헌법적 책무 때문"이라며 "헌법재판소는 고단한 삶이지만 슬기롭게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이 내미는 손을 굳건하게 잡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이 후보자 모두발언 전문.

존경하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 국민의 대표자들께서 정기국회 중에도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고 귀중한 시간 내주신 데 대해서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많은 것이 모자란 제가 헌법재판소장의 막중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면서도 감히 이 자리에 선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헌법수호를 사명으로 하는 헌법재판소가 하루 빨리 조직적 완전성을 갖추어 달라는 시대적 요청과 헌법적 책무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직업군인이신 선친을 따라 살던 가평 산골 싸리문 앞에서 하얗게 눈 덮인 산야를 바라보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전방과 후방을 전전하며 살던 그 아이는 다섯군데 학교를 다닌 끝에 국민학교를 마쳤습니다. 무공수훈자이신 선친부터 3대게 걸쳐 함께 30년 넘게 군복무를 한 저희 가족은 그 시절 다들 그랬듯이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욕심내지 않고 따뜻한 성품을 키우며 자랐습니다.

초임법관으로 재직하던 저는 비상계엄 해제 후에도 민간인에게 군법회의 재판관을 인정한 대법원판결에서 이일규 전 대법원장님의 반대의견을 보고 교과서에만 있는 줄 알았던 헌법정신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법관과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헌법정신과 기본권을 어찌 구현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한편, 선입견을 배제하고 열린 마음을 재판에 담은 법관, 보수와 진보의 분류에 매몰되지 않고 마음을 열어 정진과 사색을 함으로써 사고의 폭이 넓은 재판관이 되고자 다짐해 왔습니다. 

좋은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선례를 존중해야 하지만 얽매이지 말아야 하고 소송기록과 재판자료를 파악하느라 시간을 많이 써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색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균형잡힌 시선으로 인간을,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재판하자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야 판단이라는 숙명을 지닌 법관의 생각이 자유로워진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법정신에 바탕을 두어 서울고등법원에 재직할 때 삼청교육 피해자에 대한 판결에서 '자유민주주의국가는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단순히 이념이나 구호로 내세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존엄한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나라'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전직대통령 탄핵결정의 보충의견에서 '진정한 지도자는 국가위기의 순간에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 알맞게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년 전 '법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특강할 때 법률가는 정의를 먹고 산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 천지인 제가 정의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어서 그런 강의를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특히 법률가를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시험용 법률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정의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추구하자는 뜻에서, 또 불평등이 없는 세상은 없지만 결과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출발선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랑에 바탕을 둔 정의를 추구함으로써 형평과 사회 평화를 이룩하자는 뜻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제 위원님들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김종삼님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를 들려드리고 인사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누가 제게 정의가 뭐냐고 물어도 저는 진정한 법률가가 되지 못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생각에 생각을 더해 제 모자람을 줄이고 이 땅에 정의가 더욱 뿌리내리도록 미력을 다하겠습니다. 시인과 다름없이 살아가시는 인정많은 우리 국민들이 헌법이라는 우산 아래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으며 비합리적인 차별을 받지 않으실 수 있도록 헌법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 시를 말씀드렸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고단한 삶이지만 슬기롭게 살아가시는 우리 국민들이 내미시는 손을 굳건하게 잡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이 자리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이지만, 제가 그동안 어찌 살았고 무슨 생각을 지녔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면서 제 삶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저는 국민을 대표하시는 위원님들의 검증과 질의에 진정성있게 대답하는 한편, 위원님들께서 대변하시는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소중하게 아로새겨서 헌법이 부여한 사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경청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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