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처우문제, 병원만의 잘못일까

“25세 간호사 초봉 3700만원, 얼마나 더 줘야하나”

기사승인 2017-12-06 01:00:00
- + 인쇄
병원들이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 의사들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올 기세다. 일부는 이달 중 발표예정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의 세부추진계획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지방 중소병원들은 도산을 각오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한탄한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전공의 및 간호사 폭행, 간호사 내부행사 강제동원, 0원 월급 등 근무환경과 처우문제가 불거지며 ‘악덕사업주’로 내몰리고 있다. 당장 간호사들의 인권회복 요구가 빗발친다. 개혁 수준의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정부도 여론의 이 같은 분위기를 기회삼아 문제시됐던 점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당장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물론, 고용노동부와 국민인권위원회가 두 팔을 걷고 간호사 처우 및 근무환경 개선, 인권 회복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간호사가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한간호협회가 주관하고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보건복지위원회)과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환경노동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정책간담회에서는 이런 병원의 현 주소가 여실히 드러났다.


◇ 노동자(간호사) 처우는 사업자(병원)의 투자로부터?

‘간호사 근로환경 및 인권 실태’의 발표에 나선 최희선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간호사는  의료기관 활동 간호사 수가 OECD 평균의 61% 수준이라는 통계에 이어 의료기관의 86.2%가 의료법상 간호인력기준을 위반하고 있다는 집계결과를 제시했다. 

이어 2017년 병원현장의 간호사 노동실태조사결과를 바탕으로 87.9%가 연장근무를 하지만 이 중 6.7%만 전액을 보상 받으며, 응답자 52.7%가 토요근무를, 77.8%가 월평균 6회 이상의 밤 근무를 서고 있고, 식사를 거르거나 휴식을 취하지 못하며 연차나 임신, 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한다는 등의 열악함을 나열했다.

심지어 보고에 따르면 간호인력 부족으로 58.6%가 임신 중 초과근무를, 21.7%가 임신 중 야근근무를 경험했다. 간호사 중 29.6%가 유ㆍ사산을 경험했지만 그로 인한 법정 휴가를 모두 사용한 비율은 46.9%에 불과했다. 폭언과 폭행 성폭력을 당한 이들도 60%, 11.4%, 10.5%에 달했다.

여기에 더해 병원 내 갑질과 인권유린 사례를 임금ㆍ휴가ㆍ노동ㆍ모성ㆍ성희롱ㆍ폭력ㆍ지시ㆍ비품ㆍ의료 9가지로 유형화하고, ▶병원현장을 바꾸기 위해 야간전담제 확대 ▶단시간 근로확대 ▶간호등급제 개선 ▶조직문화개선 ▶의료현장에서의 위법적ㆍ불법적 요소 근절 ▶장기근속이 가능한 처우개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 간호사 뒤를 이어 근로환경 개선사례를 소개한 조성현 구로성심병원 간호부장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도입을 통한 정부 지원 확보 ▶임금 구조개선 및 상향 ▶밤 근무에 따른 부담완화 및 복지 강화 ▶조직문화개선 등 지속적인 노력으로 퇴사자들이 돌아오는 환경을 갖춰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간호사의 병원 내 지위와 성폭력 문제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언급한 차지영 이화여자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나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며 함암치료 중에도 병원에 근무해야만 했던 경험을 토로한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민혜진 간호사도 의료기관의 인식과 개선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병원계, 열악한 근무환경엔 ‘공감’… 해법엔 ‘글쎄’

결국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간호사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인식 및 태도 변화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병원 내 간호사 수를 늘리기 위해 의료기관이 임금과 복지,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더 많은 투자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힘쓰는 한편, 간호사의 지위와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체계와 지원도 이뤄져야한다는 뜻으로 귀결된다.

간호사 처우문제, 병원만의 잘못일까
반면, 병원계를 대표해 참석한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총무이사(사진)는 간호사들의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 인권 회복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는 공감하면서도 관련법 개정과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하고 이를 위한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의 지원과 동의가 우선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는 “병동 간호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고 있어 긴장 속에 근무한다. 3교대로 노동강도는 타 업무에 비해 높고, 업무적 특성 외에도 심화된 인력난으로 법정 근무시간을 지키고 휴가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는 등 근무환경이 점차 열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병원들 또한 인력을 확충하고 근로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탄력근무제, 야간전담간호사 선발, 임금 및 수당 개선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수가 보상수준이 유지되는 한 병원의 자구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낮은 수가와 보상으로 인해 의료인력을 충분히 채용할 수 없어 간호사 수가 법정간호인력을 밑돌고, 업무가 가중되며 밤 근무일수가 느는데 반해 휴가나 휴식은 줄어드는 근무여건의 악화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어 “정말 열악하고 제대로 대우를 못해주는 의료기관들도 있다. 편차가 심하다. 보건의료계의 반성과 병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이직률을 낮추고 근무여건개선과 연계된 수가보상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개선방식만으로는 한계”라고 강조했다.

의료계가 아닌 영역에서의 간호사 인력 요구가 높아지고, 의료기관 나름의 자구책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배출되는 간호인력의 절대적 수를 늘리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높은 급여를 제시해도 지역의 경우 간호사가 없어 충원이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한 한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그는 “대학을 막 졸업한 간호사의 초임이 4000만원을 넘어선 경우도 있다. 대체로 대기업을 상회한다. 그럼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회전문처럼 인력을 돌려막는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10만명 이상의 간호사가 더 필요하다. 지금의 대책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연내 근무환경개선과 처우개선을 중심에 둔 간호인력수급대책을 수립ㆍ발표하고 병원에서 이탈하는 간호사들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와 수가체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간호관리료 산정기준을 병상에서 환자로 바꿔 그로 인한 수익을 간호사 처우개선에 쓸 수 있도록 단서를 달고 ▶취약지 인력채용 시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등의 방향을 제시했다. 

여기에 ▶간호사 업무영역과 역할, 범위를 명확히 해 간호사 본연의 업무를 벗어나는 인력을 최대한 줄이고 ▶성폭력, 성희롱 등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의료기관 인증기준에 처우 관련 지표를 추가하는 등의 변화도 꾀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병원계 전반에 대한 잘못된 근로환경 개선과 근로감독에 따른 즉각적 시정조치에 더해 복지부 또한 의료법 등 관련 규정 위반에 대해 주시하고 철저히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함께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