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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리뷰] ‘세 번째 살인’ 성실한 두 아버지의 ‘라쇼몽’ 체험

‘세 번째 살인’ 성실한 두 아버지의 ‘라쇼몽’ 체험

이준범 기자입력 : 2017.12.07 17:41:55 | 수정 : 2017.12.07 17:42:00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목표는 오직 하나,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다. 의뢰인의 마음이나 사건의 진실은 궁금하지 않다. 재판의 승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재판관이 아닌 변호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평소 동료와 농담을 하며 여유 있게 지내다가도 일 얘기만 나오면 냉철하게 선을 긋는 성격이다. 그런 그가 변했다. 우연히 변호를 맡게 된 살인범 미스미(야쿠쇼 코지)를 만나면서부터다.

미스미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의 사장을 천변에서 살해했다. 그의 지갑을 빼앗아 달아나다 붙잡혔다. 처음부터 모든 범행을 자백한 미스미에게 검찰은 살인, 강도 혐의를 적용했다. 돈을 목적으로 누군가를 죽인 건 원한으로 인한 살인보다 죄가 무겁다. 시게모리는 원한으로 인한 살인이었음을 입증해 사형을 면하는 전략을 짠다. 하지만 미스미에겐 사장을 죽일 뚜렷한 동기가 없다. 이번이 첫 번째 살인이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된다. 사건은 점점 복잡한 길로 빠지기 시작한다.

‘세 번째 살인’(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은 변호사인 주인공이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다. 비슷한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세 번째 살인’을 지금까지 등장한 영화들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야기 전개를 그저 바라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마치 배심원이 된 것처럼 일정 거리를 두고 재판 진행 과정을 지켜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변하고, 사건의 본질이 변하고, 믿었던 사실이 변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점점 확신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재판은 묵묵히 진행된다. 주인공 시게모리는 매번 확신 없이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고 또 번복한다. 나중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일마저 의미를 잃는다. 재판의 결과가 그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렇게 거짓으로 가득한 재판의 풍경이 완성된다. 영화가 끝난 이후 관객이 느끼는 찜찜한 기분은 시게모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살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다. 기존 장르 영화 공식에 맞춰 진범을 찾으며 볼 수도 있고, 주인공의 성장담으로 지켜보는 것도 가능하다. 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최근작에서 반복하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도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부녀(父女)의 관계와 그에 관한 대화, 그 안에 담긴 감독의 메시지를 읽는 재미도 있다.

시게모리의 입장에서 영화를 지켜보다 보면, 내 생각이 정말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감독의 계산에 포함된 의심이다. 두 번의 환상 장면, 줄거리와 큰 관계가 없는 한 번의 사적 경험이 감독이 숨겨놓은 장치다. 완전히 떨어져 있던 세 부녀의 이야기가 조금씩 겹치면서 ‘혹시’ 하는 의심을 싹트게 한다. 살인, 강도, 사형 등 섬뜩한 단어들이 오가는 사이에서 따스한 가족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여러모로 일본 영화 ‘라쇼몽’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1950년 발표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네 명의 증언을 들려주는 영화다. 믿음이 의심으로, 진실이 거짓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무엇 하나 믿을 수 없는 혼란을 주는 구조다. ‘세 번째 살인’은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 헤맨다. 그 답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해석하는 건 영화를 본 관객의 몫이다.

배우들은 하나 같이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안정감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깔아놓은 무대에서 야쿠쇼 코지는 명배우의 내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피해자의 딸 사키에 역을 맡은 히로세 스즈는 두 명배우의 대결 구도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있는 힘껏 뿜어낸다. 변호사와 의뢰인으로서 접견실에서 대치하는 장면, 그 중에서도 두 사람의 얼굴이 절묘하게 겹쳐지는 순간은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는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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