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규제에도 ‘때’가 있다

기사승인 2017-12-2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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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규제에도 ‘때’가 있다중국이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우리나라가 앞서던 LCD(대형 액정표시장치)는 물론 중소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마저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대형 OLED 시장 선두를 지켜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지만 정부는 때아닌 규제에 열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서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OLED 패널 공장 설립을 5개월 만에 조건부 승인했다. 

당초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 광저우 공장 설립을 결정했다. 정부 승인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2~3개월로 내다보고 계획을 실행해 나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산자부가 기술과 일자리 유출을 이유로 승인을 미룬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모든 계획을 중단하고 속 타는 5개월을 보냈다. 통상적으로 타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2~3개월 걸린 것을 감안한다면 긴 시간 진전이 없었던 셈이다.

LG디스플레이 측은 기술 유출은 문제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이미 10년 전에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LG디스플레이도 중국에 LCD 공장이 있다. 양사의공장 모두 기술 유출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기술 유출 대비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OLED는 아날로그적인 기술이 필요한 일종의 ‘수작업’이다. 제대로 된 장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이 간단히 베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면 정부가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으면 될 일이다. 기업에 해결책을 종용하는 것은 자칫 횡포로 비칠 수 있다.

정부가 크게 염려한 일자리 유출 역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사안이다. 

산자부의 ‘차기 투자 국내 실시’ 조건에 LG디스플레이 측은 경기도 향후 신기술 개발은 국내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를 위해 추가로 필요한 인력 역시 모두 국내에서 충당될 예정이다. 산자부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규제는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규제에도 때가 있다는 것을 산자부가 간과했던 듯싶다. 만약 광저우 공장 투자 건이 불승인됐다면 LG디스플레이로서는 OLED 투자 적기를 놓쳤을 것이 분명하다.

전 세계 OLED 시장에서 대형 OLED를 생산하는 곳은 LG디스플레이가 유일하다. 빠르게 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주자에 만족해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경쟁국들과의 격차를 하루빨리 벌려놔야 한다. 정부 승인을 기다리느라 LG디스플레이가 낭비한 수개월이 유독 뼈아프다.

규제에 발목 잡힌 기업이 경쟁국에 따라잡힌 뒤 후회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승희 기자 aga445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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