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두고 볼 수밖에 없나

제도권 벗어난 그들만의 사립대 병원… 식구에도 위아래가 있다?

기사승인 2018-01-13 0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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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서 의사들의 수련을 담당하는 교수의 폭언과 폭설, 폭행에 시달리던 전공의들이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이 2가지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는 스스로 병원을 그만두는 방법이다. 해당 전공의에 대한 평가를 비롯해 의사사회에서의 평판, 전문 진료과목 선택에 절대적 지위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수와의 관계가 깨진 상황에서 병원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평생을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관련 사실들이 외부에 알려져 다른 병원으로 옮겨 수련을 이어가기도 힘들뿐더러 그렇다고 최소 7년 이상 이어온 전문의로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것도 사실상 힘들어서다.

실제 한 대학교병원에서 수련하던 전공의 A씨는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후 병원을 나왔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다른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동수련을 약속했던 병원들도 사건이 커지자 받아줄 수 없다는 입장만을 피력해서다.

이에 A씨는 “폭행당한 전공의들은 의사사회에서 매장되고 꿈을, 희망을 포기하는데 가해자들은 과태료만 낼 뿐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성폭행을 당하고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문제는 A씨를 비롯해 피해 전공의들이 주장하는 이동수련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다, 248개 수련병원 중 국립대병원은 손에 꼽는 정도에 불과해 정부의 조치에 한계가 있어 제도 개선이 이뤄져도 수련병원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또한 “국·공립 의료기관이 아닌 한 민간수련병원이나 가해 전문의를 직접 제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계를 인정하며 최대한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이동수련제도를 비롯한 수련병원제도의 개선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왕의 귀환’ 두고 볼 수밖에 없나
◇ 식구 챙기기 바쁜 사립대학병원 등 민간 수련기관

피해자가 꿈을 접고 병원을 관둬야하는 불합리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하나 있다. 해당 수련병원이 소속된 대학이나 의료기관에서 인사권을 발휘해 가해교수와 피해전공의가 수련을 이어가야하는 상황을 해소시켜주면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쿠키뉴스가 11일 전공의 폭행사건이 발생한 대학들의 인사규정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 또는 금품비위, 성범죄 등 관련 법령에서 정하는 비위행위로 인해 감사원 및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인 사람 등의 경우 비위 정도에 따라 징계조치가 가능하다. 

이어 징계는 파면·해임·정직·감봉·견책 5단계로 그 정도에 따라 교원징계위원회에서 의결된다. 문제는 정직과 감봉의 경우 최대 3개월까지 처분이 가능할 뿐이며 파면과 해임에 대한 기준은 별도로 두고 있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최근 성추행과 폭언문제로 2명의 전공의가 사직한 수도권 대학병원의 경우 1명의 가해교수는 휴직을, 다른 가해교수는 대학 산하 타 지역병원으로 이동근무하고 있다. 그나마 또 다른 병원은 해당 사건의 중대함과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해 사건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해당 가해교수의 직위를 무기한 해제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현재 사립대병원의 경우 해당 대학교의 배려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만약 지금처럼 이목이 집중되지 않았다면 해임 등 중징계를 바라기는 어렵다. 결국 3개월 후 병원으로 복귀해 전공의들이 보복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도 전공의들은 교수들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면서도 입을 다물고 알려지길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대물림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책적,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가해교수에게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최소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된 공간에서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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