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이름만 붙으면 비싸지는 기기들

제도·처방 등에 업고 가격 횡포 휘둘러도 대응방법 없어… 보장성강화와도 먼 얘기

기사승인 2018-01-20 0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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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상 의료기기는 질병의 진단·치료 또는 예방을 목적으로 쓰이는 제품부터 장애 등을 경감·보조하는 제품, 임신을 조절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 등을 일컫는 용어다. 의료기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심사 과정을 거쳐야하며 총 4등급으로 분류된다.

등급의 분류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등으로 나뉘며 숫자가 높을수록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많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인체 내에 일정기간 머무는 콘돔은 잠재적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3등급에, 인체에 이식되는 필러나 스텐트는 최고등급인 4등급에 속한다.

반대로 1등급 의료기기의 대표적인 예가 습윤밴드나 저주파 자극기 등이다. 별다른 인체 유해성이 없어 의약외품 혹은 공산품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제품들이다. 의료기기 관계자 A씨는 “의학적 효능효과를 표기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질병의 진단 혹은 치료, 경감 등 포괄적 개념에서 ‘의료’라는 쓰임이 인정될 경우 제품의 기능적 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가격은 수배 이상 뛴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체온계와 온도계, 저주파 자극기와 안마기를 들 수 있다.


체온계와 온도계의 차이는 크지 않다. 작동원리도, 생김도, 기능도 별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가격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적외선을 기반으로 하는 비접촉식 체온계와 온도계의 경우 온라인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4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저주파 자극기와 안마기 또한 의료기기 등록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치료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효능효과를 광고할 수 있다는 점이나 미세한 기능적 차이를 제외하면 유사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격만 2배 이상 날 뿐이다.

이와 관련 A씨는 “의료기기로 허가받는 과정이나 광고를 위한 심의절차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나 기타 소요 자원을 가격에 산입할 수밖에 없다”며 “일부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차이가 크지는 않다”고 해명했다.

◇ 제도 사각에서 ‘활개’… 울며 겨자 먹는 소비자들

그렇다면 의료기기와 일반 공산품 간의 가격차이만 존재하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다. 오는 5월 18일부터 마약류 의약품을 조제·유통하는 제약사와 의약품 도·소매상은 물론 직접 약을 다루는 약국이나 의료기관, 연구시설 등은 관리·통제를 위해 바코드리더기를 구비해야한다.

식약처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오남용이나 불법적 혹은 편법적 유통·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마약류통합정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확하고 즉각적인 관리와 대응에 필요한 전자적 관리체계를 갖춰야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약류 또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취급하는 모든 기관이나 개인은 마약류관리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바코드 혹은 RFID 리더기를 직접 구비해 마약류통합정보관리센터로 보고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비용은 일반 바코드·RFID 리더기의 3배에서 10배까지도 차이가 났다. 

실제 일부 리더기 업체와 온라인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확인한 결과, 일반 바코드·RFID 리더기의 경우 수만원대에서 30~40만원대 언저리로 가격이 형성돼있지만,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적합하다며 배포된 광고지에 등장하는 리더기 가격은 100만원대를 훌쩍 넘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의료기관 특히 1인 의원의 경우 리더기 구매비용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이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아직은 시일이 남아 논란이 크지는 않지만 시행 직전에는 한 번 크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진통제나 수면제 등의 일부가 포함되는 만큼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시스템과 장비를 갖춰야하는데 식약처에서는 소요비용에 대해 직접적인 지원은 할 수 없다고 밝혀 의료기관들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며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는 심정”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외에도 정형외과 등에서 사용되는 보조기를 비롯해 당뇨측정기 등 만성질환 치료에 쓰이는 많은 수의 의료기기들이 건강보험 급여제도의 사각에 놓여있어 환자 및 소비자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강화 정책에서도 제외돼 부담은 지속될 전망이다.

당장 골절치료 후 관절의 경직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거나, 기능적 보완을 위해 쓰이는 보조기들의 가격은 가뿐히 10만원대를 넘으며 그 구조나 구성품 등 원가의 수십배에 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관련 한 의료계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를 아무리 찾아봐도 장애인 보장구 등 일부의 보장성이 미미하게 좋아졌을 뿐”이라며 “비급여의 급여화 논의에서도 보조기 등 의료기기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어 환자들은 수만원에서 수십, 수백만원의 부담을 건강보험의 보조도 없이 오롯이 짊어져야한다”고 제도적 한계를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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