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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피고 여상규, 역사의 심판을 시작합니다'

'피고 여상규, 역사의 심판을 시작합니다'

민수미 기자입력 : 2018.01.29 05:00:00 | 수정 : 2018.01.29 09:08:25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이 정말.”

‘양쪽 종아리 무릎 뒤에 각목을 끼워 매달아 놓거나, 성기에 볼펜 심지를 끼웠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자행한 만행이 아닙니다. ‘진도 가족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 석달윤씨가 안기부에 끌려가 당한 고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울시경 대공 정보형사로 근무하던 석씨. 그는 1980년 간첩으로 몰려 중앙정보부에 끌려갑니다. 석씨는 이후 47일 동안 조사받고, 그해 10월 구속됩니다. 불법 구금과 잔혹한 고문에도 석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검사에게 이야기하면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말이죠. 그러나 현실은 처참했습니다. 검사는 진실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1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무려 18년. 석씨의 억울한 옥살이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1998년 가석방된 석씨는 2014년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27일 방송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석씨를 비롯해 전북 김제 최을호씨 가족 등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방송 제작진은 석씨 사건과 관련, 그의 1심 판결에 관여한 판사가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무고한 석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여 의원은 당당했습니다.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석씨를 기억하느냐.”고 묻자 여 의원은 “재판을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매주 열 건 정도씩 한다. 1년 이상 된 것은 기억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재심이라는 제도가 있는 이상 무죄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석씨가)고문을 당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다. 지금 그런 걸 물어서 뭐하느냐.”고 제작진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1심 판결로 한 사람의 삶이 망가졌다”는 말에 여 의원은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 정말.”이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판사도 사람이니 예외가 될 순 없겠죠. 그러나 판사의 실수는 보통 사람의 그것과 다릅니다. 오판은 한 사람과 그의 가족, 주변인들의 일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큰 책임이 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실수를 인지한 이후도 그렇습니다. 하다못해 상대방 옷 위에 물을 쏟아도 사과합니다. 18년 세월을 눈물로 보냈을 석씨입니다. 여 의원의 입에서 ‘웃기고 앉아있다’는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요. 그것도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말입니다.

반성과 사과를 모르는 여 의원. 그의 발언이 불러온 폭풍은 거셉니다. 여 의원의 SNS는 공분한 네티즌에 의해 초토화가 됐습니다. 특히 “인간의 탈만 썼다.” “악마를 봤다.” 등의 내용을 담은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 의원의 의원직 박탈과 처벌을 바라는 내용의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고요. 

어디 여 의원뿐일까요. 방송에서 언급된 황우여 전 교육부총리,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안강민 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 정형근 전 한나라당 최고의원, 임휘윤 변호사, 김헌무 변호사, 이영범 변호사 또 ‘지옥에서 온 장의사’라 불린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까지 모두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들이 고문받고 옥살이하는 동안, 사건에 동조한 많은 가해자는 사회 요직을 차지하고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렇게 얻은 감투가 얼마나 달콤했을지는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운 좋게 법의 심판을 피한 가해자들. 하지만 정말 무서운 역사의 심판이 남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재판은 이제 시작입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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