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중환자실에서 전공의들 사라질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연쇄사망사건, 의료인 진료거부사태로 확산 조짐

기사승인 2018-02-03 0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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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학병원에 입원하면 질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질문을 받는 의사의 대부분은 전공의라고 불리는 전문의 수련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이다. 주치의 혹은 교수라고 불리는 이들은 외래진료나 오전 일찍 또는 오후 늦은 시간의 회진 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련의 전공의들이 집단 진료거부를 선언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환자 사망 등 위험도가 높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신생아중환자실 등의 진료과 배치를 거부하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연쇄사망사건이 발생한 이후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주치의와 전공의, 간호사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던 전공의 3년차 강 모씨가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몰리며 의사면허를 비롯해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면서 전공의들의 공분을 사고 있어서다.


피의자 강 씨에 대한 서울지방경찰청의 4번째 소환조사가 이뤄진 2일, 강 씨를 변호하는 이성희 변호사를 비롯해 대한전공의협의회 안치현 회장,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강 씨 등 이대목동병원 의료진들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기자들 앞에 섰다.

이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사의 부당함을 성토하며 무리한 수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의료계 내 혼란과 국민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경고했다. 당장 안치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오는 4일 임시대의원총회를 통해 전공의들의 단체행동에 대한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안 회장은 전공의가 간호사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며 시설 배치를 지시할 수 있는 사람도, 보험청구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픈 아이들이 왜 균에 감염되었는지 경로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없이 희생양을 찾기 위해 의사라는 이유로 책임을 묻고 과실치사의 피의자로 수사해서는 안 된다”고 토로했다.

특히 강 씨의 상황은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전공의들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거론하며 “전공의는 잠재적인 살인자가 아니다. 이렇게 전공의가 잠재적인 과실치사의 피의자로 낙인찍힌다면 전공의는 앞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최선을 다해 치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여기에 ‘파업’을 언급하며 단체행동의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의료진들의 개인변호를 맡고 있는 이성희 변호사도 “경찰의 수사방식에 의문이 든다”면서 “참고인으로 의견을 물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감염에 대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피의자 신분으로 무리하게 조사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전공의는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니며 관리·감독의 잘못을 물으려면 전문성과 신뢰, 책임에 기반한 대형병원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책임자를 문책하거나 제도적 한계를 인정해야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후 “지금의 상황은 1만6000여명의 전공의가 위험을 동반한 진료를 할 수 없도록 내모는 격”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의료진의 심리적 위축과 방어진료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의료진에 대한 탐문과 조사에 앞서 사인으로 지목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이 유발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명확한 확인이 선행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까지 날파리가 나온 수액줄, 머리카락 혹은 확인되지 않는 부유물이 떠다닌 수액 등 오염문제가 연이어 발생했다”며 “아직까지 (신생아 연쇄사망사건에 쓰인) 동일한 주사제나 수액세트, 수액줄 등에 대한 회수조치가 내려지지 않고 있다. 먼저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제조·유통단계에서의 오염에 대해서도 파악한 후 투명하게 공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 집행부는 오는 4일 오후 임시대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최근 이대목동병원 사건에 전공의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전공의 탄원서 구명운동 ▲표어 및 SNS를 통한 지지운동에 대한 의견을 물을 예정이다.

더 나아가 ▲NICU 근무 거부 ▲집단파업 등 단체 행동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동의를 얻을 계획이다. 만약 이날 대의원들이 뜻을 모은다면, 전공의들은 자발적으로 사표를 제출하고 위험이 따르는 근무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파장은 전국 수준으로, 주요 병원의 중증·응급환자의 진료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의원총회에서 이뤄질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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