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흥부' 정우 "입지 다졌다고? 한참 남았다… 이제 시작"

기사승인 2018-02-14 10: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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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흥부' 정우

영화 ‘흥부’(감독 조근현)를 접하는 관객들은 흔히 구전문학으로 전해지던 ‘흥부전’속 흥부를 생각한다. 착하고, 남에게 언제나 베풀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흥부. 그러나 정우가 맡은 흥부는 전혀 다르다. 엽색 소설을 쓰다가 곤장을 맞고, 제 목적을 위해서라면 남의 집에서 며칠이고 뻗대고 있으면서도 눈치 한 번 안 보는 인물. ‘흥부’의 진짜 흥부는 따로 있다. 바로 백성들을 위해 베푸는 조혁(김주혁)이다. 흥부는 자신의 목적 때문에 조혁을 만나지만, 조혁을 옆에서 지켜보며 서서히 변하게 된다. 최근 ‘흥부’ 개봉 전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는 “캐릭터 변화 폭이 컸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흥부라는 이름이 우리들에게 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하지만 ‘흥부’속의 흥부는 제가 가지고 있는 흥부와 전혀 다른 이미지여서 끌렸어요. 한 번도 사극을 해 본 적이 없으니 궁금하기도 했죠.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관객분들께도 거부감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욕심은 났는데, 선뜻 ‘하고 싶습니다’라고 제작사에 말씀은 못 드렸어요. 그렇게 고민하던 중, 쟁쟁한 선배들이 ‘흥부’에 참여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용기를 냈죠.”

흥부 역의 중점은 자연스러운 연기다. 세상만사 편하면 그만이던 흥부지만 그에게도 과거사가 있고,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가 일으키는 변화는 세상을 뒤흔들게 된다. 앞서 정우는 언론시사회와 제작보고회 등에서 “연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어떤 부분이 힘들었을까.

“관객들은 다양한 기대를 하고 극장을 찾아요. 영화에 대한 기대, 그리고 저에 대한 기대. 제가 기존에 해오던 캐릭터에 익숙하고, 흥부에 익숙하던 관객들이 막상 ‘흥부’를 보게 되었을 때 너무 낯설지 않으셨으면 했어요. 친절하게 접근해야 흥부가 처한 상황을 잘 따라오실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제가 처음 생각한 톤은 사극 톤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연구도 많이 했죠. 또 흥부가 가지고 있는 과거사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덕분에 첫 장면부터 흥부가 가지고 있는 감정선이 깊어요.”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흥부는 정우에게 홀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다른 캐릭터보다 유난히 많았다. 이야기의 힘을 받아 캐릭터도 자연스레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첫 장면부터 많이 다쳐서 이미 단단해져 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감독님께서 믿고 맡겨주셨던 덕이 커요. 저는 연기할 때 분석이나 방향에 대한 조언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아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러나 저러나 제 몫이니까 제가 연기를 만들어내야 하지만, 감독님이 믿고 충실하게 맡겨주시는 것이 가장 좋았어요. 선배들이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바도 많았죠. 정진영 선배의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영화 ‘약속’이나 ‘초록물고기’ 같은 쟁쟁한 작품을 보면서 자랐거든요. 함께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라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보고 편하게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분들이 계세요. 막상 저는 그렇게 편하진 않은데. 하하. 감독님도 저랑 촬영은 편할 줄 아셨대요. 제 목표가 편한 연기이긴 해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저 사람 연기 잘 하네’가 아니라 그냥 별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연기를 지향하죠.”

정우가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 30대 중반쯤이면 입지를 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그러면 막상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어떨까.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막 뒤를 돌아보고 추억할 정도의 경력이 쌓여 있지는 않잖아요, 제가. 그냥 앞으로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아, 내가 좀 많이 했구나’ 하고 느끼는 날이 있지 않을까요? 제가 뭐 작품 얼마나 했다고요. 아직 한참 남았죠. 이제 시작이에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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