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요즘도 국내 농구 보나요?”… KBL에 닥친 위기

“요즘도 국내 농구 보나요?”… KBL에 닥친 위기

기사승인 2018-02-1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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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농구 보는 사람이 있어?”

지인들 사이에서 농구 얘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대답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농구장을 줄곧 찾았던 이들이지만 최근엔 아예 발길을 끊었다. 기자의 아버지는 테니스, 골프, 볼링, 야구, 배구 등 스포츠라면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유별난 스포츠팬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농구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프로농구가 위기다. 현장의 기자들도 나날이 줄어드는 관중수를 실감한다.

겨울 스포츠의 강자는 옛말이다. 무섭게 성장한 프로배구에 왕좌를 내줬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 닐슨(이하 전국 가구 기준)에 따르면 올 시즌 프로농구 상반기(167경기) 시청률은 0.113%로 지난 시즌 같은 기간 0.190%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프로농구 중계의 대부분을 맡고 있는 MBC스포츠+의 상반기(85경기) 평균 시청률도 0.190%로 지난 시즌 0.263%와 비교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최근 5시즌 가운데 최저 시청률이다.

반면 경쟁자 프로배구의 시청률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7-2018 시즌 V리그 전반기 평균 시청률은 0.831%로 지난 시즌(0.757%)과 비교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강팀끼리 맞붙는 소위 빅 매치에선 시청률이 1%를 웃돌기도 한다.

시청률뿐만 아니다. 프로농구는 관중 동원도 미미하다. 서울 SK를 제외하곤 경기 당 3000명도 채 불러 모으지 못할 만큼 소위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린 지 오래다.

실제로 관중 감소치도 뚜렷하다. 2011-2012시즌 133만3681명의 관중을 기록한 이후 내리막을 타고 있다. 특히 지난 3시즌에 걸쳐 관중이 급격히 감소하는 중이다.

2014-2015시즌 116만1687명에 달했던 관중은 2015-2016시즌엔 103만905명으로, 2016-2017시즌엔 92만7754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정책적으로 무료 관중을 줄이고 유료 관중을 늘렸다는 것을 감안해도 심상치 않은 감소폭이다.

한 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프로농구는 어쩌다 몰락하게 된 걸까.

▶기량은 늘었는데… 스타 선수의 부재 

대부분의 팬들은 프로농구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를 선수들의 기량 저하에서 찾는다. 프로농구 원년보다 오히려 기량이 퇴보했다는 것이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지적이다. 

일단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신장은 프로 원년에 비해 3cm 넘게 커졌다. 1997-1998시즌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88.2cm였지만 2017-2018시즌엔 191.3cm다. 농구에서 3cm 차이는 기량 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슈팅 능력이 떨어진단 지적도 편견에 불과하다. 1997-1998시즌 평균 3점 성공률은 35.6%다. 2017-2018 시즌 3점슛 성공률은 14일 오전 기준으로 33.7%다. 2009-2010시즌에 3점슛 거리를 50cm 늘린 점을 감안할 때 정확도가 크게 떨어진다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왜 팬들은 선수들의 기량이 이전보다 저하됐다고 인식하는 것일까. 

‘컴퓨터 가드’ 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은 “선수들의 기량은 분명 평균적으로 좋아졌다. 그러나 과거엔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많았다. 지금의 선수들은 다양한 무기를 갖추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내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평균 20득점을 기록하는 선수가 1명도 안 된다. 20득점 이상을 넣는 국내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람보슈터’ 문경은 감독 역시 동일한 진단을 내놨다. 그는 “기량은 확실히 늘었다. 지금의 빅맨들을 과거와 비교해도 그렇다. 다만 외국인 선수들의 투입으로 인해 어중간한 신장의 선수들이 다른 포지션으로 밀려났다. 이전의 2번(슈팅가드)이 빠르고, 기술 좋고, 슛을 잘 쏘는 2번이었다면 지금의 2번은 키는 큰데 드리블을 3번도 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말했다.

‘반쪽짜리’ 선수들이 많아 기량이 퇴보한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또 줄어드는 프로농구 인기의 원인을 “스타 선수가 없어서”라고 진단했다. 

그의 지적처럼 서장훈과 이상민, 현주엽과 문경은 등 팬들을 사로잡은 스타 선수를 근래엔 찾기 힘들다. 

최근 몇 년간 국내무대의 주인공은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그들의 기량이 리그 판도를 좌우했다. 공격의 시작과 마무리는 외인의 손끝에서 이뤄졌다. 

일부 감독은 ‘외인이 없으면 경기를 못한다’는 조롱까지 받았지만 지나친 외인 의존도를 사령탑의 책임으로만 돌릴 순 없다. 현장의 감독들은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팀 승리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단 것을 안다. 그러나 이정현, 김선형 등의 스스로 메이드 할 수 있는 해결사를 제외하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활용할 선택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스타가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국내 선수들도 위축됐다. 능력의 50%도 발휘하지 못한 채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하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공격 제한 시간이 촉박한데도 외인 선수를 찾다가 공격권을 상대에게 내주는 플레이가 속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육성 시스템은 답보 상태… 한국 농구, ‘보는 재미’가 필요하다

선수 기량이 저하됐다는 인식은 ‘20년 전과 똑같은 농구를 해서’라는 의견도 있다. 기량은 이전보다 분명 좋아졌지만 고착화 된 육성 시스템 속에 시대에 발맞춘 리그와 선수로 변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주희정(전 삼성)은 필리핀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오센’과의 인터뷰에서 “필리핀 농구선수들의 연봉은 KBL보다 적다. 그런데도 개인기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며 “필리핀에는 대부분의 팀들이 D리그를 갖추고 있다. 선수육성 시스템에서도 한국이 배워야할 점이 많다”고 털어놨다.

필리핀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선수를 양성해냈다. 필리핀 내 농구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농구 경기 결과가 신문 1면을 차지할 정도다. 

반면 KBA와 KBL은 육성 시스템 개선을 부르짖으면서도 장기적인 플랜을 만들지 못했다. 고교와 대학에 만연한 성적지상주의는 개인 기량보단 조직적인 농구에 걸맞은 선수를 길러내면서 팬들의 ‘보는 재미’를 앗아갔다.

NBA 중계로 인해 팬들의 눈이 높아진 이유도 있다. 화려한 개인기, 빠르고 화끈한 공격 농구에 농구 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아침 시간 중계가 시작되는데도 오히려 프로농구보다 시청률이 높다.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NBA 중계 시청률은 평균 0.214%로 드러났다. 이는 30대 남성을 기준으로 한 조사다. 국내 농구 인기의 중심에 있었던 30대 남성이 차츰 NBA로 시선을 돌리고 있단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획]  “요즘도 국내 농구 보나요?”… KBL에 닥친 위기

경기에 개입하는 심판, 오심 재발 대책은 전무

해를 거듭해도 나아지지 않는 오심 논란 역시 프로농구 인기에 악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것이 ‘홈콜’이다. 홈 팀에 유리한 판정을 해준다는 '홈콜'에 대한 의심은 일부 팬들 사이에선 이미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영기 KBL 총재의 ‘홈 팀의 승률을 더 높여야 한다’는 발언이 부채질이 돼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 과정에서 심판 판정에 이득을 본 특정 팀이 팬들의 비판을 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KBL과 김 총재가 정말 의도적으로 홈 팀의 승률을 높이라 지시했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팬들이 ‘홈콜’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을 믿기 시작한 원인을 짚어봐야 한다. 

프로농구 심판의 자질 논란은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기본적인 터치아웃, 트래블링을 지적하지도 못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승부처에서의 오심으로 경기 향방을 바꾸는 일도 허다했다. 심판 판정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고자세와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심판진의 태도도 문제다. 올 시즌 DB 이상범 감독은 심판 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다 오히려 벌금을 부과 받았다. KCC 추승균 감독도 차별 판정에 항의하며 자켓을 벗었다가 테크니컬 파울을 부과 받았다. 지난 달 6일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파울이 불린 상황에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이것이 항의로 간주돼 테크니컬 경고를 받았다. 당황한 추 감독이 항의하자 이번엔 테크니컬 파울을 부과했다.

그런데도 KBL의 재발방지 대책은 전무하다. 징계마저도 솜방망이에 그친다. 

오심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적잖다.

익명을 요구한 A팀 감독은 “심판이 겨우 14명~15명 정도 밖에 안 된다. 프로야구처럼 많은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심판도 사람인지라 지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KBL, 수뇌부의 노력이 절실하다 

KBL이 리그 운영에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농구영신매치’를 비롯해 올 시즌 기발한 올스타전을 기획하며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다. 농구팬을 사로잡는 마케팅과 이벤트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텔링, 구단 사이의 경쟁 구도 정착 등도 이뤄져야 한다.  리그에 유쾌한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  

이밖에도 지역연고제의 성공적인 정착 등 지역 팬들과의 스킨십을 늘릴 방안을 찾는 게 시급하다. 

김영기 총재의 임기가 끝났지만 KBL은 새 총재를 찾지 못했다. 결국 다가오는 시즌부턴 총재 구단 체제로 리그를 운영하기로 했다. 첫 총재 구단은 울산 현대 모비스다. 모비스는 내부에서 인물을 추려내 총재 임무를 맡길 예정이다.

팬들은 KBL이 새 수뇌부와 함께 난관을 타개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사진=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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