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 죽음, 폭발 직전 간호 현실 보여주는 것”

기사승인 2018-02-19 15: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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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 죽음, 폭발 직전 간호 현실 보여주는 것”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설 연휴 기간 중 서울아산병원 신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관련 깊은 애도를 표하고, (이번 사건은)폭발 직전의 한국 간호 현실을 드러내 주는 상징적 징표라면서 명확한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19일 입장자료를 통해 “서울아산병원이 신규간호사의 투신자살 사고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과 확고한 재발방지대책 마련, 유가족에 대한 사과, 자살사고 산재처리와 보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설 연휴 첫 날인 15일 오전 10시께 서울 송파구 아파트에서 간호사 박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한 신입 간호사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 후 숨진 간호사의 남자친구 A씨는 소셜미디어 간호사 익명 커뮤니티에 “친구의 죽음이 그저 개인적인 이유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려 ‘태움’ 문화와 격무가 죽음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간호계에 따르면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달달 볶는다는 의미로 간호사회의 고질적인 악습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는 “정확한 원인은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정황으로 보면 신규간호사 적응교육기간 받은 직무스트레스, 과도한 업무량과 긴 노동시간, 실수에 의한 사고 책임 부담이 신규간호사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건의료노조는 “신규간호사 자살사건은 우리나라 최대병원이자 최고병원을 자랑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며 사회적 파장이 크다. 그러나 신규간호사를 죽음으로 내몬 직무스트레스와 긴 노동시간, 과도한 업무량, 열악한 노동조건과 조직문화는 간호등급 1등급인 서울아산병원만이 아니라 전체 의료기관에 만연돼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 측에 따르면 해당 간호사는 입사 후 6개월의 신규적응 교육기간 동안 살이 5kg 빠질 정도로 끼니를 일상적으로 걸렀고,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저녁번(evening) 근무를 오후 1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5시에 퇴근할 정도로 극심한 업무량에 시달렸고, 신규적응 교육기간 동안 출근하기를 힘들어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보건의료노조는 “실수로 환자의 배액관(수술 후 뱃속에 고이는 피나 체액을 빼내는 관)이 찢어지는 일이 발생하자 소송에 걸릴까 두려워 밤새 간호사 실수에 관한 소송피해사례를 검색할 정도로 실수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무서움과 불안함도 컸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 간호사 평균 근속연수가 5.4년에 불과하고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이 33.9%에 이르는 현실은 연간 간호현장에 투입되는 2만여명 신규간호사들의 처지가 박모 신규간호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며 “‘백의의 천사’라 불리는 간호사가 한국의 간호현장에서는 ‘백의의 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보건의료노조는 나이팅게일의 사명감을 안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기 위해 의료기관에 첫발을 내디딘 신규간호사가 몇 개월을 견디지 못해 이직을 선택하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비극적 현실은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금 한국의 간호현장은 폭발 직전이다. 박모 신규간호사의 죽음은 한국의 간호 현실이 폭발 직전 상황임을 드러내주는 상징적인 징표”라며 “다시는 박모 신규간호사와 같은 슬프고 아픈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노동조건 개선과 업무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획기적 개선다 ▲신규간호사에 대한 적응교육기간 충분히 보장과 교육기간 동안 신규간호사를 정원 인력에서 제외하는 등 신규간호사 교육제도 획기적 개선 ▲간호사 업무시스템 획기적 개선 ▲간호사의 인권 획기적인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보건의료노조는 19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신규간호사 자살사고 진상규명 ▲재발방지대책 마련 ▲신규간호사 적응교육제도 개선 ▲시간외근무와 장시간노동 근절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 해소 ▲병원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또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한 ‘의료기관내 갑질문화와 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보건의료노조 창립 20주년 기념식과 국내토론회(2월26일), 국제토론회(2월27일), 정기대의원대회(2월28일)에서 이번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 자살사고를 계기로 간호사 노동조건 개선과 병원 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전조직적 운동을 선포하고 본격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송병기 기자 songb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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