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야구의 꿈 키우다 범법자 신세… 서흥초 야구부 결국 폐지

기사승인 2018-02-23 06:00:00
- + 인쇄

[옐로카드] 야구의 꿈 키우다 범법자 신세… 서흥초 야구부 결국 폐지

꿈나무 양성을 위한 ‘착한 범법’은 있을 수 있을까? 안타까움이 담긴 시선이 인천의 한 초교에 쏠리고 있다.

인천시 동구 소재 서흥초교가 지난 5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야구부 해체를 결정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38년 역사의 서흥초 야구부는 프로선수 250여명을 배출한 유망주의 산실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 속한 최지만은 이 학교에서 야구의 꿈을 키웠다. 최지만이 학교를 찾아 어린 선수들을 격려하고 야구용품을 전달한 게 불과 2달 전 일이다. 송은범(한화), 신민재(LG) 등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서흥초를 거쳐 간 터라 야구 꿈나무들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이 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다보니 위장 전입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현행법상 중학생은 체육 특기생으로 인정받으면 소재지 내 학교가 아니라도 입학이 가능하다. 그러나 초등학생은 체육 특기생 조항이 아직까지 없다.

결국 서흥초 야구부는 꿈나무 육성을 위해 ‘암묵적인 위법’을 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2016년 3월 부임한 신임 교장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김지국 교장은 위장 전입을 문제 삼으며 “야구부가 주로 사용하는 운동장을 다수의 학생이 이용하는 시설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곧장 야구부는 해체 국면에 직면했다. 인원 부족에 시달린 야구부는 회의와 탄원, 시위를 거듭한 끝에 지난 5일 무장해제 당했다.

당장 김 교장의 조치는 법적으로 문제의 여지가 없다. 주민등록법 제37조에 따르면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리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25조에 의하면 초등학교 및 중학교의 장은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아동이나 학생이 있는 경우 해당 아동이나 학생의 거주지를 관할하는 읍·면·동의 장 및 교육장에게 통보해야 한다.

야구부 학부모들은 지난해 시 교육청에 탄원서를 냈다. 야구부원의 위장전입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초중등교육법에 원인이 있다는 주장이다. 한창 야구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이가 주변에 야구부가 없다는 이유로 꿈을 접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유소년클럽 내지는 리틀클럽을 통해 활동이 가능하지만 아이가 전통 있는 야구부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길 원하는 부모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특정 학교로 쏠리는 과열을 지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6 전국 초등학교 야구부 현황’에 따르면 인천에는 8개의 초등학교 야구부가 존재하지만 남구, 남동구, 동구, 연수구 등에 집중돼있다. 그 외 지역 학생은 부모와 함께 전입하든지 위장 전입의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에서 상당수 부모는 생계를 이유로 전입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했다.

결국 이번 야구부 해체 사태로 피해를 본 건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법 테두리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불안 속에서 꿈을 키웠다. 일부 학생은 2시간이 넘는 통학거리를 감내하면서 훈련에 매진했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항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위장전입을 빌미로 전통 있는 야구부를 이렇듯 하루아침에 폐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학부모와 학교측의 소모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잖아도 옆 나라 일본에 비해 야구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교 자료가 지난 수 십 년동안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고 있다. 어쩌면 이번 야구부 해체의 씁쓸한 결말 이면에는 제2의 최지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