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이어지는 폭로… 대중문화 ‘미투’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어지는 폭로… 대중문화 ‘미투’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사승인 2018-02-23 15: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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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이어지는 폭로… 대중문화 ‘미투’ 아직 갈 길이 멀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으로 대중문화계 전반이 들끓고 있습니다. 연일 새로운 폭로가 이어지며 그간 감춰져 있던 성추행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죠. 문단의 원로인 고은 시인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방송, 공연, 영화, 가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미투 운동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친숙한 유명인의 이름이 가해자로 오르내리며 대중의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배우 조민기는 자신의 모교인 청주대학교(이하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상습적으로 재학생들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명의 폭로성 글이 게재됐고 곧 조민기가 성추행 의혹으로 대학에서 면직 처분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최초 보도 당시 조민기의 소속사 측은 “명백한 루머”라고 일축했으나, 이어진 폭로에 태도을 바꿨습니다. 강의 시 사용한 표현이 문제가 돼 징계를 받았다는 소속사 측의 해명도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주대 연극학과 출신 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민기 교수’가 지속해서 성희롱을 일삼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조민기가 한 학기에 한두 명을 지정해 ‘내 여자’로 지칭했다거나, 자신의 오피스텔로 학생을 불러 술자리를 갖고 성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죠. 한 졸업생은 재학생 사이에서 조민기 교수의 성추행에 대응하기 위한 암묵적인 매뉴얼이 있었다고 주장해 큰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직접적인 피해자나 이를 옆에서 지켜본 학생들은 한목소리를 내며 조민기의 처벌을 촉구했습니다.

조민기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내사를 벌이던 경찰 측은 지난 22일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인터넷 게시글을 비롯해 학교 자체 조사 등 내사 결과에서 드러난 피해자들의 진술이 일관성 있다는 판단입니다. 소속사 측은 경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조민기는 방송사 전화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한 뒤 침묵 중입니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연출은 거짓 사과 기자회견으로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연극계의 대부이기 때문일까요. 사과 기자회견 또한 한 편의 연극처럼 연출 하에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연희단거리패 소속 연출가 겸 배우 오동식은 이윤택이 사과 기자회견 전 시를 쓰듯 사과문을 작성하고 불쌍한 표정을 연습하는 리허설을 진행했다고 내부 고발했습니다. “성추행은 인정하나, 성폭행은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이윤택의 발언은 법적 자문 끝에 나온 처벌 회피용이란 것이죠.

이를 고발한 오동식 또한 과거 조연출을 폭행한 사건이 알려지며 사과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자신이 성추행에 동조했다는 익명의 제보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이 사실을 폭로한 것이 홍선주 씨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시절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나 벌어진 실수”라는 뒤늦은 사과를 내놓기도 했죠.

이윤택과 비슷한 시기에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연극 연출가 오태석 서울예대 초빙교수는 기자회견을 철회하고 침묵으로 일관 중입니다. 관련 기관이 하나둘 사과나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당사자는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서울예대 측은 “참담한 심정”이라며 “조속한 시간 내에 대학의 정관과 규정 절차에 적법하게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극단 목화의 페루 리마 공연예술축제 참가 지원을 연출가 오태석이 동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알렸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흥부’의 조근현 감독은 자신이 연출하는 뮤직비디오 배우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지망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것이 확인된 후 영화 홍보 일정에서 배제됐습니다. 이밖에도 유명 배우와 제작자에 대한 익명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죠.

가요계도 화살을 피해 가지는 못했습니다. 래퍼 던말릭이 미성년자 팬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피해자에 의해 폭로된 것이죠. 이에 지난 22일 던말릭의 소속사인 데이즈얼라이브 대표 제리케이는 “던말릭의 퇴출을 결정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소속사 차원에서 멤버 사생활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더라도 가까운 위치에서 소속 아티스트를 관리하지 못한 점, 어떤 정신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을 굳히고 있었다는 점에 책임을 통감한다”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짧은 시일 내에 수많은 폭로가 이어졌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았습니다. 폭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해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의 불씨를 피운 서지현 검사 측은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최근 서울동부지검 조사단을 직접 찾아 항의의 뜻을 밝혔습니다. MBC 유명 드라마 PD가 스태프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가해 대기발령 상태라는 보도 이후 해당 PD가 어떠한 처분을 받았는지에 대한 소식도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충격은 관심으로, 관심은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 피해자가 용기 내어 ‘미투’를 외친 이유이지 않을까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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