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행동치료' 권한 제한에 임상심리사 뿔나다

임상심리학회 "심리학 근거해 개발된 치료 주체서 배제시키는 것 비상식적 결정"

기사승인 2018-02-28 0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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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행동치료' 권한 제한에 임상심리사 뿔나다

 

우울한 기분이 든다. 우리 아이가 화를 참거나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남편과 사별 후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우리는 의사를 만나야 할까, 심리상담가를 만나야 할까?

정신과 전문의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간의 영역 갈등에 불이 붙었다. 청년의사가 지난달 31일 보도한 <복지부, 정신과 상담수가 인상…상담치료 활성화 기대> 기사의 “(인지·행동치료는)정신건강의학과 3년차 이상 전공의를 포함한 정신과전문의가 시행해야 하며, 기본 12회(수면장애는 6회)까지 급여하고 개인‧집단 정신치료 등과 중복산정은 제한하기로 했다. 수면장애, 뇌전증,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으로 인한 2차성 우울증에 한해서는 신경과 전문의도 시행 가능하다”는 구절 때문이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실시되는 정신치료에 대한 수가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대표적인 정신과 영역의 비급여로 지적되던 인지·행동치료에 건강 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임상심리학자들은 “임상심리학자가 주도해 온 인지·행동치료 권한을 의료진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며, 정신과 및 신경과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이번 개정으로 국민이 인지행동치료 전문가에게 치료받을 권리가 박탈될 것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임상심리사는 시행기관, 수련과정에 따라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사로 구분된다. 여기서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정신과 병원 및 지역사회에서 정신보건에 관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전문인력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면서 정신질환의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의료, 사회복귀 등의 업무를 수행할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제정된 자격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학사학위 이상 소지하고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이 지정한 전문요원 수련기관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수련을 마쳐야 한다. 이를 통과하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자격을 인정받는다. 수련기간과 경력에 따라 1급, 2급으로 구분된다.

정신질환자의 문제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장애 여부뿐만 아니라 성격, 대인관계양상, 적성 등 다양한 측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이하 임상심리사)는 이들에 대한 심리평가, 사회복귀 촉진을 위한 생활훈련 및 작업훈련,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교육, 지도 및 상담, 정신질환자의 진단과 보호신청, 정신질환 예방 활동, 정신보건에 대한 조사연구 등의 활동을 수행한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우울증,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공포증,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중독 장애, 수면장애 등에 필요한 심리치료를 임상심리사가 수행하고 있으며,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설 사회복귀시설 또는 개인 상담센터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다만 국내 의료법상 정신질환의 진단과 치료는 의료인의 고유 행위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시설에서 근무하는 임상심리사는 진단 소견서만 작성할 수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임상 심리사가 진료나 치료를 전담하는 경우는 없다. 인지·행동치료 등의 치료 행위는 전문의가 지시를 내리면 협업해서 진행하고, 심리 검사 결과를 해석하거나 치료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사의 가장 큰 차이는 약물 처방 가능 여부다. 국내 의료법상 정신질환의 진단과 치료는 의료인의 고유 행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는 정신 장애와 연관된 다양한 신체 질환에 대해 ▲정신과적 면담 ▲정신상태 검사 ▲다양한 심리검사 및 뇌기능 검사를 비롯한 여러 진단 검사 자료를 이용하여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수립해 약물을 포함한 각종 생물학적 치료, 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을 수행한다.

한국임상심리학회 관계자는 “인지·행동치료의 치료 권한을 의료인에게만 주는 것은 이를 의료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현장의 모든 임상 심리사들의 치료 행위를 불법으로 보는 것이 된다”며 “그러나 이 치료는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의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초해 개발된 심리학적 치료기법이다. 미국에서는 임상심리학자는 정신질환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고, 영국에서는 인지행동치료를 모든 병원에서 임상심리사가 도맡아 주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난했다.

관계자는  “수술은 외과 전문의가 실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지·행동치료는 정신과 전문의뿐만 아니라 임상 심리학자가 실시하는 것이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기본 상식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인지행동치료 분야에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정신보건임상심리사들을 인지행동 및 행동치료 시행 주체로 허용해 왔는데, 개정안에서 이들을 배제시킨 이유를 모르겠다”며 “신체적 의료행위와 정신건강 영역에서의 의료행위를 명확히 구분히 하지 못하는 관계자들에 대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1997년 정신보건법 제정 초기부터 정부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를 정신보건 전문인력에 포함시켰다. 정신건강전문요원 수련 교육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지난해 정신건강임상심리사의 이론 교육 및 실습 교육에 기존 심리치료에 더하여 ‘인지행동치료’를 반드시 실시하도록 수련교육 커리큘럼도 개정했다”며 “인지·행동치료 시행 주체에서 정신건강임상심리사를 배제시키는 것은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학문적 기초 등을 역행하는 매우 비상식적인 의사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개정이 이뤄졌을 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과 전문의 및 시행주체에서 배제된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세 집단이 전문 자격 취득을 위해 대학, 대학원 및 수련 교육 과정에서 인지행동치료를 얼마나 어떻게 훈련받았는지 교육 커리큘럼 검토가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덧붙였다.

 

또 “임상심리사들은 인지행동 치료의 급여화가 국민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혜택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환영하고 적극 지지하지만, 국민들의 세금이 관여되는 이런 중대한 결정이 있기 전 정신건강복지법에 관여하고 있는 관계자들을 포함해 신중한 검토를 했어야 했다”며 “정신건강 분야는 정신건강 전문가 집단이 따로 있는 만큼 다수의 전문가가 모여 충분한 토론을 통해 국민들의 보험 혜택을 최대화 할 수 있는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인지·행동치료를 할 수 있는 권리에 임상 심리사들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며, 의료법에 의거해 추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자들을 상담하는 것은 분명 질병치료이기 때문에 임상 심리사가 단독으로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정신과 의료진과 협력해 진단·치료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은 없다”며 “이번 개정은 환자들의 요구로 인해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비급여 중 가격 부담이 높은 치료를 급여화 한 것이다. 임상 치료사 측에서 요구사항이 있다면 별도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상 치료사 관계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인지·재활치료의 급여화인 것 같다. 대표적인 비급여 영역으로 불리던 인지·행동치료가 급여가 되면 가격이 낮아지면서 많은 환자가 병원으로 몰릴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며 “이를 우려하는 것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를 민간에서 치료하는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비춰진다”고 답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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