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 기업으로 키우고 주위에 도움 되는 일 하겠다”

입력 2018-03-05 11: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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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에 본사를 둔 한 중소기업의 놀라운 발전상이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로포장용 자재를 제조·시공하는 영일HNT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경영개선을 통해 업계에서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전문 건설도장공사업체로 설립된 영일HNT9년 만에 각종 품질 인증은 물론 친환경 인증과 경영 관련 인증을 획득했다. 특히 벤처기업 인증과 각종 자재의 한국산업규격(KS) 인증, ISO 9001을 기반으로 2014년부터 여성기업과 환경표지 인증 등을 연속 획득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다. 2015년 부설 영일HNT연구소를 설립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파주에 새 공장을 세워 무려 30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사람 중심의 기업이념을 표방한 영일HNT는 탄성포장용 고무칩과 도로포장용 수지를 생산하고 친환경우레탄 트랙, 친환경우레탄 농구장, 어린이놀이터 탄성포장, 미끄럼방지용 포장, 자전거도로 포장, 기타 특수포장 등을 시공하는 업체다.

이런 영일HNT의 중심에는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여성 CEO 남운선(48) 대표가 있다. 2013년 경영을 떠맡은 남 대표는 사람 중심의 기업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 짧은 기간에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이런 점에서 남 대표는 업계에서 단연 주목받는 여성 CEO. 그런데 남 대표에게는 경영능력 못지않게 주목되는 면이 있다. 범상치 않은 그의 인생이력이다. ‘운동권 학생에 이어 노동운동을 하다 지역단체와 정당 활동까지 해온 삶의 발자취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특히 정당 활동을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노무현, 유시민, 김두관, 김부겸 등 쟁쟁한 정치인들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맺었다. 거기다 정당 활동을 하면서 4년여간 미국 유학을 갔다 오기까지 했다.

이런 남 대표를 만나 그의 경영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여성 CEO로 나선 계기가 궁금하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시민캠프 공보팀에 참여해 일하다 대선에서 실패한 뒤 우연찮게 기업 경영을 하게 됐다. 대선 실패 뒤 한동안 멘붕 상태로 지내면서 호구지책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유시민 의원 시절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의기투합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합류하게 됐다.

처음엔 학교 운동장 트랙이나 농구장 및 어린이놀이터를 시공하는 회사였던 영일HNT를 그냥 좀 도와준다는 생각이었는데, 취직하기엔 나이가 많다는 생각에 과감히 투자를 하고 대표직을 맡게 됐다.

-기업 경영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리고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

특별한 비결은 없다. 굳이 비결이라면 항상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모토를 최우선으로 두고 양심에 따라 회사를 운영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업 경영에 왜 어려움이 없었겠나. 특히 경영을 맡고 나서 초창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회사 운영 경험도 없는데다가 회사 사정이 제일 어려웠을 때라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밀려드는 압류통지서와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는 게 일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조금씩 나아지던 사업이 우레탄 납운동장파동을 겪었다. 이제는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우레탄을 새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대다수 학교운영위원회는 친환경마크가 있는 제품으로 교체를 요구했고, 마침 우리 회사 제품은 친환경인증을 받은 상태였다.

그때부터 매출이 획기적으로 올랐다. 지난 한 해는 직원들과 정말 정신없이 일했다. 덕분에 공장을 임대해서 사용하던 처지를 벗어나 작지만 번듯한 공장도 매입해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운동권 대학생을 거쳐 노동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가.

요즘 ‘1987이라는 영화가 유행인데, 당시 고3이었던 나에게 87년은 그저 대학생들이 데모를 많이 하던 시절일 뿐이었다. 하지만 대학입학 후 선배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나를 운동권학생으로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통으로 기억될 그 시절을, 조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던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하게 해주었다.

학생운동 후 당연히 현장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동자의 길을 가게 됐다. 노동자의 삶을 배우겠다고 22세 때 파출부 일도 했다. 하지만 일을 못해서 오래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삶을 오롯이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긴 시간과 진통이 있었던 것 같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한 친구로부터 네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은 두고두고 내 자신의 진심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게 해줬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일을 해봤나.

노동운동을 한 이후 많은 직업을 경험했다. 학생운동을 하고 노동현장으로 가게 된 과정은 어쩌면 별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대개 다음 진로는 지역의 사회단체나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 단체에서 활동하기에는 세상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함께 세상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벼룩시장을 뒤적이며 잡다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식당 종업원, 텔레마케터, 학습지 교사, 캐디 등 많은 일을 하며 세상을 부유했다.

그 경험은 소중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때 못지않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정당 활동은 어떻게 하게 됐나.

이런저런 일을 하다 친구가 상근자로 있던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에서 조직국장으로 일하게 됐다. 나름 재미도 있었지만, 차츰 회의가 들었다. 그런 중 우연히 정치인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던 후배와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서 답답해하고 있던 때 대선 경선과정에서 등장한 노란풍선이 눈에 들어왔다. 정치인에게 희망을 가지게 한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져 지역 노사모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 시대가 달라지고, 새로운 정치공간이 열리고 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됐다.

서울 마포에서 개혁국민정당의 당원으로 정당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2003년 자연스럽게 고양시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유시민 작가의 선거운동을 돕게 되고 유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됐다.

“사람 중심 기업으로 키우고 주위에 도움 되는 일 하겠다”

-미국 유학을 간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정당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1년여 준비한 뒤 20051231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좀 무모하다 싶은 도전이었다.

돈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돌아와야 하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촘촘히 채워진 생활을 해야 했다. 자전거와 버스를 번갈아 갈아타고 다니며, 잠시의 여유도 없이 지냈다.

덕분에 산타바바라 칼리지와 산타모니카 칼리지를 거쳐 캘리포니아주립대(어바인)를 졸업하고 20107월 귀국할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친 뒤 다시 정당 활동을 했나.

귀국 후 지역에서 정당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처음엔 여의치 않았다. 그런 중 민주당에서 당대표 선거가 있었고, 개혁당 시절 인연을 맺었던 선배들의 권유로 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선거를 돕게 됐다.

이후 201218대 대선 때는 당시 김두관 경남지사의 경선을 돕다가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의 공보팀에서 일하게 됐다. 대선 실패로 많이 아쉬웠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걸 배웠다. 지난해 19대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의 민주시민특보로 참여했다.

-나름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포부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을 살면서 모든 일이 내 힘이나 능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특히 영일HNT를 맡아 경영해온 과정과 정당 활동으로 여러 분들과 인연을 맺는 과정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처음 회사를 좀 도와주겠다는 생각이었다가 대표직까지 맡게 됐다. 회사 경영을 하면서 처음에는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끝이라고 여겼던 우레탄 납운동장파동이 전화위복이 됐다. 정당 활동을 하면서도 쟁쟁한 분들과 연결되리라고는 이전에 꿈도 꾸지 못했다.

신이 주신 시간을 채우다 보면 어느 모퉁이에서 내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나타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늘 겸손하려고 노력한다. 혹시 마음속에 교만이나 자만이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한다

영일HNT를 더욱 사람 중심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로 인해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남운선 대표 프로필>

-1970년 출생

-대원여고, 동국대학교 수학과 졸업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버인 졸업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 조직국장 역임

-18대 대선 문재인 후보 시민캠프 공보부팀장 역임

-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민주시민특보 역임

-월간 고양사람발행인

-영일HNT 대표이사

고양=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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