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뉴스’에는 피해자 얼굴만 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 부각하는 뉴스의 민낯

기사승인 2018-03-07 0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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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정무비서를 여러 차례 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곧바로 더불어민주당은 안 전 지사의 출당 및 제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수 시간 뒤 안 전 지사는 도지사직 사퇴를 포함해 모든 정치활동 중단 의사를 밝혔다. 검찰청 내 성추행 사건 폭로로 촉발된 한국의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여권의 대선 잠룡 역시 또 다른 성폭력 가해자에 지나지 않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현재 언론들은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3의 피해자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누가 가장 먼저 또 다른 피해자를 그들의 무대위에 올리느냐가 관건이다. 자극적인 어휘, 어디서 어떻게 당했는지에 집중한 뉴스는 장사가 된다. 시청률과 이슈화, 페이지뷰(PV) 모두를 움켜쥘 수 있어, 언론에게 미투는 꽃놀이패에 다름없다. 적나라한 성폭력 묘사와 선명하게 박힌 피해자의 사진으로 가득한 뉴스가 매순간 쏟아지는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점차 실종되고 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

2006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지난해 10월 헐리웃에서 본격화됐다.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폭로하는 피해자들이 늘어나면서 미투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됐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더 이상 성범죄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129뉴스룸>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계기로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한 달여 남짓 관련 뉴스가 폭발적으로 쏟아졌지만, 여기에 운동의 본 취지가 담겨있는지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언론학자들은 피해자 중심의 보도 행태에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지적한다. “현재의 언론 보도는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피해자의 이름을 강조하고 신상을 노출하는 것이 만성화돼 있다. 가해자의 성폭력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언론이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피해자에 집중하면 대중의 뇌리에 사안은 가십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반면, 가해자 중심으로 보도하면 권력 구조 속에서 어떻게 성폭력이 일어났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문종대 교수도 흥미 위주의 보도를 위해 고발을 한 피해자에게 집중하는 것은 피해 당사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이러한 뉴스가 되풀이 되면 결국 피해자들은 입을 닫게 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의사가 배제된 보도의 폐해도 제기된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의 설명이다. “피해자마다 보도를 원하지 않지만 사법당국을 통한 정의를 추구하거나, 모두를 원할 수도 있다. 반면, 보도와 정의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 언론의 무리한 취재와 보도가 당사자의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디어 비평 언론인들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보였다. <미디어오늘>의 장슬기 기자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이른바 검찰발로 유사한 뉴스가 계속 나오는 것이나, 명지전문대 성추행 보도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확인을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지만, 언론은 팩트가 확인되면 바로 보도하는 식의 전형적인 사회부 사건 취재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스>의 송창한 기자도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통해 폭로가 이뤄지면 피해자와 접촉 없이 뉴스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안은 피해자를 최우선에 둬야 한다. 언론 보도로 피해자가 또 다른 곤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선정보도는 가장 큰 문제다. 동의대 문종대 교수의 말이다. “언론의 신중하고도 엄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뉴스가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부분을 사실인 냥 기술하는 모호한 표현은 지양되어야 한다. 가령, 시청자 및 독자가 뉴스를 보고 불륜인데 보복하려고 폭로했다는 식으로 착각하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자의 2차 피해로 직결된다.”

성공회대 최진봉 교수는 외신에서 가해자가 성기를 노출했다라던지, ‘피해자의 신체 일부분을 더듬었다는 식의 묘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우리 언론은 선정보도로 흐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장슬기 기자도 방송의 재연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상이나 정보가 많을수록 좋다는 기존의 보도 관행으로, 피해자의 신상을 거론하거나 부각하는 식의 보도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송창한 기자 역시 현재의 미투 운동 보도 흐름상 피해 사실 적시가 일정부분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뉴스의 제목만큼은 선정적인 표현을 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었다. 미투가 이른바 마녀사냥으로 훼손되지 않으려면 언론의 신중한 태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서울대 한규섭 교수는 전통적 저널리즘에서 거짓을 사실인냥 보도하는 것, 즉 오보를 경계해왔지만, 미투 운동에선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사건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현재 국면에선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혹시 억울한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억울한 사례가 발견되기 시작하면 미투 운동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미투 뉴스’에는 피해자 얼굴만 있다

보도 윤리의 실종 혹은 무시

앞서 밝힌 언론학자들과 미디어 비평 언론인들의 지적은 사실 새롭지 않다. 대부분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의 권고 사항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이는 한국 언론의 보도 윤리 실종(혹은 무시)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소위 메이저 언론이라 불리며 여론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앙 일간지와 방송사들에게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발견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방송 뉴스 비평에서 “‘00’ 관련 보도의 클릭수가 더 높고, 성폭력 관련 보도 댓글을 통해 사건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책임을 개별 언론사와 개별 기자들만의 탓으로 모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언론의 여론 형성 기능과 대중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뉴스에 인권 감수성을 녹이려는 노력의 부재는 언론은 공기(公器)’라는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만큼 작금의 한국 언론과 뉴스는 최악이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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