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바람 바람 바람’ 이병헌 감독 “불륜 미화 영화 왜 만들겠어요… 더 포괄적인 이야기”

이병헌 감독 “불륜 미화 영화 왜 만들겠어요… 더 포괄적인 이야기”

기사승인 2018-04-03 0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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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미화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힘내세요, 병헌씨’, ‘스물’에 이은 자신의 세 번째 영화 ‘바람 바람 바람’ 개봉을 앞둔 이병헌 감독은 인터뷰 내내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영화의 주요 소재인 ‘불륜’을 ‘사랑의 부정적 측면’, ‘부정적인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영화가 잘못하면 불륜을 정당화하는 영화로 비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연일 ‘미투’ 운동이 벌어지는 현재 분위기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이병헌 감독은 ‘바람 바람 바람’ 제작을 제의받던 순간을 떠올렸다. 처음엔 한국 관객의 정서와 안 맞을 것 같아 제의를 고사했다. 하지만 원작 체코 영화의 엔딩 장면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처음 원작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봤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재밌게 봤어요. 하지만 한국 정서와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제가 할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재밌지만 영화의 엔딩이나 전체적인 톤을 받아들이긴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제작사에서 끈질기게 요청하시기에 ‘왜 내가 이 영화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영화를 다시 봤어요.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 이유는 인물들의 감정 때문이에요. 상황을 따라가는 코미디 안의 인물들이 어떤 감정일지 궁금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느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의 엔딩에서 인물들이 굉장히 외롭고 비루해 보였어요. ‘영화가 이런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원작에서 상황을 따라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따라갔다면, 난 감정으로 접근하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불륜 코미디’라는 장르가 이 감독을 긴 시간 괴롭혔다.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는 내내 불륜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일까 고민했다. 자신 있는 코미디를 마음껏 할 수 없다는 점도 큰 부담이었다.

“부정적인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낸다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부담이 컸어요. 사실 작정하고 웃겨보려는 생각으로 덤비면 못할 거 뭐있겠어요. 부정적인 소재와 코미디를 접목하는 작업도 작업자 입장에선 도전해보고 싶고 재미있는 모험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바람 바람 바람’에서 웃기는 건 두 번째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들이 제 의도에 어긋나게 해석할 여지가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 장면에서 인물이 전달해야 할 감정에서 벗어나면 일단 차단했어요. 웃기는 것보다 혈기왕성한 코미디 감성을 억누르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바람 바람 바람’은 분명 이 감독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렇다고 이 감독의 기존 색깔과 완전히 동떨어진 영화는 아니다. 전작에서도 현실에서 우리가 벌이는 일상적 일탈과 부정적인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왔기 때문이다.

[쿠키인터뷰] ‘바람 바람 바람’ 이병헌 감독 “불륜 미화 영화 왜 만들겠어요… 더 포괄적인 이야기”

“인간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면에 관심이 많았어요. 전 그게 인간의 나약함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바람 바람 바람’ 뿐 아니라 ‘힘을내요, 병헌씨’, ‘스물’에서도 쉽게 드러내기 힘든 인간 내면의 욕망들을 그렸어요. 불륜이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선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이라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탈, 행동들도 있어요.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담배를 피면서 걷는 것, 누군가에게 욕을 하는 것 등등이 그렇죠. 아주 작고 하찮은 일탈에서도 쾌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스물’이나 ‘바람 바람 바람’은 등장인물의 세대만 다를 뿐 비슷한 사람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병헌 감독은 ‘바람 바람 바람’에 대해 관객들의 해석과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예상했다. 영화를 해석하고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기 때문에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제작하고 투자한 사람들이 왜 수십억 원을 들여 불륜 미화 영화를 만들었겠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다루는 상황들을 불륜 하나로만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나 꼬마가 등장해서 인물들을 지켜보고 조롱하는 시선도 있거든요. 특정 세대의 남성, 여성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인간의 나약한 본성과 거기에서 오는 허무함, 연민처럼 더 포괄적인 이야기로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사랑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셔도 좋고요. 불륜을 미화한다고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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