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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호한 적 없는 여성노동, 일터에 엄마는 없다

보호한 적 없는 여성노동, 일터에 엄마는 없다

전미옥 기자입력 : 2018.04.12 08:31:37 | 수정 : 2018.04.12 21:59:54

퇴직한 간호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국내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5.4년에 불과하다. 어려운 교육과정을 마치고 전문면허까지 취득한 이들이 정작 병원에 들어가면 5년 남짓 일하고는 그만둔다. 의료현장에서 간호 인력은 항상 부족하다. 매년 의료계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이 간호인력 수급문제를 논의하지만 매번 역부족이다.

간호사들이 그만두는 표면적인 이유는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정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 떠넘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크게 작용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직면하는 보편적인 문제다. 20대 중반에 취업해서 30대 즈음 결혼할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길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다. 일터에서는 자신의 임신·출산 때문에 동료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중요한 일에서 배재될까 하는 불안이 덤으로 따라붙는다. 아이를 낳으면 맡길 곳도 요원하다. 그 결과 일터에는 소수의 여성들만 남는다. 여성이 대다수인 간호사 사회에서도 살아남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 사회는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 하지만, 이들이 처한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수년째 진전이 없다. 의료시스템의 주축인 간호사들이 이럴진대 다른 직역의 여성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떠할지 불 보듯 뻔하다. 임신·출산과 함께 중요하지 않은 인력으로 전락하고, 이 중 남다른 열정을 가진 슈퍼우먼 외에는 결국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헌법 제32조제4항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또 제36조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모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헌법정신은 지켜진 적이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임신한 근로자의 연간 유산율은 2006년 18.7%(5만809건)에서 2015년 24.5%(7만1104건)로 꾸준히 늘었다. 임신한 노동자 4명 중 1명은 유산을 경험한 셈이다. 그럼에도 최근 5년 동안 임신관련 업무재해신청은 8건뿐이다. 업무상 재해 기준에 대한 성별격차도 높다. 2015년 기준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은 산재 노동자 7919명 중 여성은 15.1%(1197명) 불과하다. 

지난 2009~2010년 유해약품을 보호 장비도 없이 다룬 것 때문에 잇따라 심장기형아를 출산한 제주의료원의 간호사 4명은 아직까지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기형아 출산과 업무상 상관관계가 밝혀졌음에도 말이다.  

국가는 저출산 문제를 운운하며 아이를 낳으라고 다그친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는 여성의 고통은 외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임신과 출산이 개인의 삶에 주는 이점은 무엇일까. 우리사회에서 결혼 후 임신과 출산은 경력단절로 이어진다. 어느 정도 육아기간이 끝난 이후에 이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기반은 거의 없다. 대부분 과거에 쌓아온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노동자로 전락하는 식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가지는 욕구의 최상위 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아이가 충족해줄 수 있는 애정과 공감의 욕구는 세 번째 단계에 그친다. 그나마도 그동안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아이에게만 집착하다가 자신을 잃어버린 실패한 어머니상을 너무 많이 봤다. 한 쪽은 열린 문이지만 다른 한 쪽은 닫힌 문에 가깝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무엇을 택할까.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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