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가결핵관리 사업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해이, 그리고 인권

기사승인 2018-04-21 0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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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가결핵관리 사업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해이, 그리고 인권전공의 폭행, 태움, 미투 운동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의료진 ‘인권’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전공의특별법,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권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의료진이 있다. ‘환자’들로부터 오는 폭력에 대응할 수 없는 의료진들이다.

지난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전국 9개 국립대학병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병원 내에서 ‘폭행 및 난동’, ‘도난 및 분실’, 기타 ‘성추행 및 자살’ 등 327건의 사건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 사건·사고를 보면 ‘폭행 및 난동’이 251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 2월 대한간호협회가 발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간호사 7275명 중 18.9%가 직장 내에서 성희롱·성폭행을 당했다고 답했고, 가해자의 59.1%가 환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과 욕설에 무방비로 노출된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2016년 5월 ‘의료인 폭행 방지법’이 시행됐지만 의료 취약계층에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 의료진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특히 노숙인 등 저소득층 결핵환자를 관리하고 있는 국공립병원에서는 이를 적용하기 어려워 환자들의 폭언과 폭행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결핵’이라는 질병 특성 때문이다. 결핵은 ‘결핵균’의 공기감염으로 전파되는 감염병이다. 즉 결핵 환자가 기침을 하면 공기 중으로 결핵균이 포함된 침방울이 배출되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숨을 쉴 때 결핵균이 폐로 들어가서 감염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감염성이 있는 환자는 격리된 병실에서 입원치료가 시행된다. 또 꾸준한 약물치료와 면역력 강화가 주 치료이기 때문에 노숙인 등 주거 취약층은 입원치료가 필수적이다. 그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면 지역사회의 감염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환자들이 고의로 진료행위를 방해하거나 폭언과 폭행, 성추행을 가한다는 것이다. 고의로 퇴원을 하지 않는 환자들도 발생한다. 그 배경에는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숙인 및 저소득층은 진료비와 입원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치료 중단의 위험성이 있어 입원치료가 필요한 점, 폭행이 일어나기 전까지 환자들의 위협에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점 등이 꼽힌다. 보험시장에서 나타나던 ‘도덕적 해이’가 결핵치료 현장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도덕적 해이’란 보험을 들고 나서 사고에 대비한 주의를 덜 하는 것, 즉 본인이 아닌 타인이 부담하게 될 때 그만큼 주의를 덜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그 피해는 의료진들에게 가고 있다. 한 의료진은 “욕설과 추행은 기본이다. 몸을 만지고서 발뺌하는 경우도 많고, 폭행을 시도하는 사람, 폭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를 퇴원시킬 수 없다. 별다른 대책이 없어 간호사들은 ‘그러려니’ 하고 진료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폭언, 폭행, 성추행 등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방안을 교육할 뿐이다. 피해 간호사의 경우 하루 쉬게끔 하고 있지만 간호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피해 간호사는 연차 사용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료비를 내지 못해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결핵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공공병원의 역할이다”

결핵환자를 관리하는 국공립병원 관계자들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수많은 폭언과 폭행, 성폭력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의 인권을 보호할만한 장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혹은 이들의 사명감에 맞는 보상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국내 결핵 환자 퇴치를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 함께 힘쓰고 있는 의료진들의 처우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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