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장애인건강정책, 사람이 우선돼야

기사승인 2018-04-24 01:00:00
- + 인쇄

[기자수첩] 장애인건강정책, 사람이 우선돼야“장애인을 위한 제도이니 잘 되면 좋겠지만 큰 기대는 안 됩니다.” 보건복지부가 오는 5월부터 시행하는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대한 모 장애인 단체 임원의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의료 접근성은 낮은 편이다. 지역사회 의료기관 내에 장애인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곳이 드물고, 장애인 진료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도 많지 않은 것이 이유다. 또 전신마비, 와상장애인의 경우 의료기관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 때문에 장애인의 의료서비스 필요도는 일반인보다 높지만, 이들이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은 한정돼있고, 이동이 어려운 탓에 필요한 기간보다 오래 입원한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국립재활원이 추산한 장애인 건강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438만9000원으로 전체 인구 1인당 연평균 진료비(132만6000원)보다 3.3배 높게 나타났다. 또 장애인 1인당 연평균 입원일수는 75.4일로 일반인 1인당 연평균 입원일수(24.7)일에 비해 3배가량 높았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외래진료가 어려운 탓에 입원일수가 높은 것으로 분석한다.

이와 관련 지난 수년간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의 의료접근성을 높여 달라’며 정부에 요구해왔다.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수렴해 지난해 12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오는 5월부터는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장애인건강주치의제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내 외래 진료를 받기 어려운 점에 착안, 지역사회 1차의료기관 의사 또는 장애를 전문으로 보는 2차 의료기관 전문의를 주치의로 등록해 장애인들이 꾸준하게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문제는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한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대한 장애인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애초에 장애인주치의를 마련해달라고 주장하던 단체조차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이 제도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2원화된 주치의 설계로 인한 혼란 ▲‘주치의제도’ 자체에 대한 의구심 ▲비용 대비 효과성 등이다.

제도에서는 건강주치의를 1차의료기관 의사와 주장애의사 두 종류로 나뉜다. 그런데 두 명의 주치의를 등록하게 할 경우 장애인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주치의제도의 주요 장점인 ‘환자에 대한 주치의의 책임’을 반으로 줄여 건강관리 효과도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의 설계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주치의제도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장애인건강주치의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주치의 형태의 제도다. 일반적인 주치의제도에서 환자는 등록한 1차의료기관 주치의에게 포괄적인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 전문의나 상급의료기관 진료를 받고자 할 경우 주치의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상급의료기관에서는 주치의가 전달한 환자의 의료정보를 참고해 진료한다.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서는 참여를 원하는 사람에 한해 진행되고,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이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애인들은 장애인건강주치의가 보유한 환자의 의료정보가 전문의나 상급의료기관에 갔을 때 의미 있게 사용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건강주치의제 관련 토론회에서 장애인단체 인사 A씨는 “어떤 병원에서 CT나 MRI를 찍었더라도 다른 병원에 가면 다시 찍어야 한다. 병원에 항의하면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며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주치의제 장점이 발휘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비용 대비 효과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굳이 새로운 제도를 통해 의원급 의료기관 이용 편의를 높이기보다는 이미 있는 의료 인프라에 장애인 시설을 추가하거나 방문진료, 원격진료를 활성화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장애인 관련 정책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타난 장애인들의 불안감도 내재돼있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추진돼야 하는데, 장애인건강주치의에 대한 확신은 부족한 것이다. 또 다른 장애인단체 인사 B씨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아직 모르겠다. 나중에 장애인들은 이용하지 않는데 정부가 장애인을 위한 제도를 만들었으니 할 일 다 했다고 나올까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제도에 앞서 사람을 먼저 헤아려야 하는 이유인 듯하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친절한 쿡기자 타이틀
모아타운 갈등을 바라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둔 도시 정비 사업 중 하나인 ‘모아타운’을 두고, 서울 곳곳이 찬반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모아타운 선정지는 물론 일부 예상지는 주민 간, 원주민·외지인 간 갈등으로 동네가 두 쪽이 난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찾은 모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