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강제동원노동자…동상으로 돌아보는 근대 서울

기사승인 2018-04-24 1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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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에 파묻혔던 서울의 역사적 장소들이 ‘동상 건립’을 통해 의미를 되찾고 있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영풍문고 앞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더불어민주당 강창일·유성엽 의원 등이 함께했다. 전 장군의 후손과 전 장군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서광범 재판관의 후손, 역사학계 원로, 동상 건립 후원자 등 내빈 200여 명도 행사장을 찾았다. 이날 공개된 전 장군 동상은 앉은 자세로 종로 보신각을 바라보고 있다. 전 장군 동상은 지난해부터 모금된 국민 성금 2억7000만원으로 세워졌다.

정 의장은 축사에서 “전 장군이 순국하신 바로 이곳이 3·1 운동과 4·19혁명, 6월 항쟁, 촛불시민혁명의 현장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며 “이 자리가 장군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은 민족사의 크나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는 장소의 적정성, 주변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 전 장군 동상 건립을 허가했다. 서린동 영풍문고는 전 장군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머물렀던 ‘전옥서’가 있던 자리다. 전옥서는 조선시대 죄인을 수감했던 감옥이다. 구한말 항일의병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전 장군은 지난 1984년 전북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는 것에 항거해 봉기했다. 내정을 간섭하는 일본세력 축출을 위해 항일무장투장도 벌였다. 그러나 전투에 패배, 서울로 압송돼 전옥서에 수감됐다. 지난 1895년 4월23일 사형 판결을 받은 후, 다음날인 24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시민들은 전 장군이 최후를 맞이한 장소가 종로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종로에서 직장을 다니는 정모(31·여)씨는 “동상이 세워지기 전까지 전 장군과 관계있는 장소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며 “이제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모(48·여)씨도 “도시 한복판에 전 장군의 순국지가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앞으로 여길 지나다니면서 동학농민운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전봉준·강제동원노동자…동상으로 돌아보는 근대 서울서울 용산역에도 근대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는 지난해 8월 용산역 광장에 일제강제동원노동자상을 건립했다. 이들 단체는 일제의 강제동원을 고발하고, 당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의 한을 풀기 위해 동상을 세웠다. 일제강점기, 최소 100만명 이상의 조선인이 용산역 광장에 집결한 후 일본과 러시아 사할린, 남양군도 등으로 강제동원됐다. 

전문가들은 동상을 통해 서울의 역사적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현재 개발이 이뤄지며 서울의 역사적 가치가 많이 훼손됐다”면서 “동상 건립을 통해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릴 수 있다. 시민들도 동상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정우 국민대학교 행정관리학과 특임교수는 “전 장군 순국 123주년이 됐지만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서 “동상 건립을 통해 ‘동학혁명’이 한국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보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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