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의학적 비급여’, 환자 위한 길은?

‘급여화’ or '존치', 기준 정할 전문가는 어디에

기사승인 2018-05-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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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핵심은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를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올리고, 재정보조를 통해 환자부담을 줄이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다. 

하지만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라는 용어부터 갑론을박이 거세다. 모든 비급여를 급여화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부터, 급여화가 필요 없는 항목들도 존재하는 만큼 모든 비급여를 급여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론까지 다양하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의학적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말로 개념을 정립하고 3800개 비급여 항목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공개했다. 함께 검토하며 급여화가 필요한 항목과 비급여로 유지시켜야할 항목이 무엇인지 나눠 보자는 취지다. 그렇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당장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 이하 의협)를 중심으로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의사집단이 문재인 케어 전면 재검토를 내걸고, 적정수가 보상이 선행적으로 이뤄져야한다며 대화를 단절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오는 25일 의정협의가 다시금 재개된다는 점이다.

전망도 일단은 밝다. 의료계 및 정부 관계자들은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의료계의 협조가 필요한데다 의협의 강경한 태도, 대한병원협회나 대한치과협회 등 범의료계의 적정수가에 대한 요구가 거세 복지부가 정책을 밀고나갈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비급여의 급여화를 위해 의료계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한편, 적정수가 논의를 위한 시간을 갖자는 등 2~3개의 안을 복지부에서 제시해 논의를 이어가는 점진적인 정책추진 방식을 취할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를 이뤘다. 

이와 관련 한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의협이 제1야당을 등에 업고 내부단속에 힘쓰며 전면 재검토에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협상테이블에 의료계를 붙잡아두기 위해서라도 적정수가 논의가 선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논의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복지부가 의료계에 끌려가는 모양새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정수가 논의를 비급여 논의와 함께 추진하겠지만, 원가자료 공개 등의 단서조항을 달아 의료계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제안들이 따를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애매한 ‘의학적 비급여’, 환자 위한 길은?
◇ 비급여의 급여화 논의 시작돼도 ‘하세월’ 우려도

문제는 우여곡절 끝에 협상테이블이 지속돼도 논의가 쉽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4년 내 3600개 비급여를 의학적 필요성 만으로 구분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계영역에 존재하거나, 의학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윤리적 혹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항목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최근 정부와 의료계 간 급여화 논의과정에서 급여대상으로 포함된 임산부의 양수검사가 비급여로 남겨진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병원계 관계자는 윤리적 문제가 쟁점이 됐고 비급여로 존치시키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양수검사의 경우 태아의 장애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대부분의 임산부가 비급여로 수행하는 산전검사로 급여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장애아로 판단될 경우 낙태를 조장하는 것과 같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에 급여문턱을 넘지 못했다.

비만치료 또한 다른 의미에서 의학적 비급여의 급여화 경계에서 논란이 예상되는 사례다. 분명 비만 특히 고도비만의 경우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원인질환으로 치료가 필요하지만, 사회 통념상 미용·성형에 해당해 급여화가 이뤄지기까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반대로 지난 정권에서 이뤄진 유방재건술이나 금연치료의 경우 건강보험재정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행 문재인 케어의 비급여의 급여화 기준에 따르면 미용·성형에 속하거나 의학적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비뇨기과 의사는 “유방암으로 유방을 절제한 후 재건에 건강보험을 지급한다면 남성의 성기 또한 감염 등 여러 의학적 이유로 인해 성형술이 필요한 경우 건강보험에서 지원을 해줘야하는 것 아니냐”며 기준의 모호함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와의 입장 차이로 인해 비급여의 급여화 논의가 조금 늦어지고는 있지만 25일 의정협의가 재개되는 만큼 동의할 수 있는 명확한 항목을 시작으로 급여화가 가능한 영역과 비급여로 유지해야하는 영역을 나눠갈 것”이라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 복지부 산하 급여심의위원회와 같은 논의체를 재조직해 급여항목의 세분화와 항목 선정 등에 전문가와 시민사회, 환자단체 등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계획도 갖고 있다”며 25일 논의의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환자단체 등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문재인 케어를 통한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했다. 정치적 판단과 힘 싸움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 환자의 건강과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전문가로써 부여된 역할을 충실히 하며 권익을 함께 요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급여화 검토 등 논의 과정에서 전문가들 특히 학회 등의 역할이 너무 위축됐거나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면서 “문재인 케어의 안착과 의료계의 권익 확보를 위해서도 정치적인 판단이 아닌 전문가적 판단에 기반한 주장과 의견을 개진하길 국민들은 기대한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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