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의료사고, 다른 아이에겐 되풀이 맙시다”

기사승인 2018-05-3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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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의료사고, 다른 아이에겐 되풀이 맙시다”

“재윤이와 같은 사고로 죽은 아이를 보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29일 서울 백범김구회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1회 환자안전일 기념행사 '환자샤우팅카페'에서는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와 환자가족들이 억울한 사연을 터놓고 발표하는 샤우팅이 진행됐다.

골수검사를 받다 마취진정제 과다 투여로 사망한 여섯 살 어린이 재윤이. 5년 9개월 남짓인 생애의 절반을 병원에서 보낸 재윤이는 지난해 11월 말, 백혈병 항암 치료 완료를 석 달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단상 위에 선 재윤이의 엄마 허희정씨는 “재윤이의 죽음에 문제가 많다고, 어른들의 책임이 있다고 느껴서 이 자리게 섰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허씨는 “골수검사가 끝난 후 재윤이는 이미 세상을 떠나있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골수검사 자체는 심정지를 일으키는 요인 아니었다. 골수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고 주사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병원에 온 지 24시간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중에 인생을 다 살고 아이를 만났을 때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며 ”재윤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언제든지 환자가 될 수 있는 눈이 새까만 다른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이 안전한 상황에서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힘줘 말했다. 

예강이 엄마 최윤주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2014년 1월 9살이던 예강이는코피가 멈추지 않아 응급실을 찾았다가 7시간 만에 사망했다.

예강이 유족은 병원의 무리한 요추천자 시술이 사망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사망 후부터 환자안전 관련 법안 마련에 힘써왔다. 그 결과 의료분쟁조정자동개시법, 진료기록부 원본·수정본 보존 의무화 등에 대한 의료법 개정을 이끌어낸 바 있다.

최씨는 “아직도 트라우마 때문에 마이크만 들고 사람들 앞에 서면 공황장애가 찾아오고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며 “예강이는 평소에 직장 다니는 엄마를 이해해주고, 도움을 주는 착한 아이였다. 예강이가 떠난 1월만 되면 좋은 걸 봐도 좋은 줄 모르는 감각이 멈춘 바보가 된다. 제게 힘을 주던 예강이라는 이름은 이제는 가장 아픈 말이 되어버린 듯하다”고 말했다.  

예강이 사건은 민·형사상 법정공방을 진행 중이며, 현재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 1월 1심 형사법원은 병원 인턴과 간호사에게 각각 벌금형과 무죄를, 지난해 1심 민사법원은 유족 패소 판결을 내렸다.

최씨는 “ 의무기록과 CCTV 영상을 한번만 봐주면 무엇이 문젠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며 “2심 재판부에서는 저희가 제출한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셔서 공정한 판결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환자 가족들의 발표 이후에는 의료계, 환자단체 등 전문가들이 패널로 나와 억울한 사연에 대한 위로와 솔루션을 제공했다.

조윤미 소비자권익포럼 운영위원장은 재윤이 사건을 들어 “의료기관이 골수검사 전 진정제 투여에 대한 충분한 지침과 내부방침을 가지고 실행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재윤이에게 이뤄진 고도진정은 실제로 언제든지 호흡이 멎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처치다. 일선 병원에서 원칙에 의거해 진정요법이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윤이와 예강이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기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의료기록에 대한 허위 조작이나 의도적인 누락 등에 대한 법적 기준이나 실제 병원 안에서 이뤄지는 의무기록 관리가 허술한 것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일 울산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 추정하기로는 연간 12000건에 달한다. 재윤이나 예강이 사례는 병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진료를 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무엇을 찾아 무엇을 고쳐야 재발을 막을 수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료진이 무심코 내던진 말이 환자와 가족에 얼마나 상처가 되는 지 생각해야 한다, 미국 의료 윤리강령에는 의료 사고 시 의료진이 충분한설명과 윤리적인 책임을 인정하도록 하는 조항이 명시돼있다. 우리나라 의료인들도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윤리라는 기본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사과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환자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다른 의료기관으로 정보를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보고된 환자안전사고에 대해 의료기관과 협조해 시스템의 문제를 찾고 원인분석 재발방지 대책을 갖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자율보고가 충분히 안 되는 상황에서 의무보고제를 시행할 경우 은폐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보고를 하더라도 선순환이 된다는 신뢰가 구축이 되면 의무보고를 할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회는 용기있는 사람이 바꿔가는 것 같다. 저희도 내주신 용기만큼 정책을 입안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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