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외고가 없어진대” 울먹이는 딸의 전화

기사승인 2018-05-31 01: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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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외고가 없어진대” 울먹이는 딸의 전화
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김지은(가명) 씨는 지난 18일 울먹이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딸은 “우리 외고가 없어진대”라고 전한 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김씨는 너무 놀라 어리둥절했다. 지난해 일반고 전환은 없을 것이라는 학교 측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딸은 자신이 졸업한 중학교를 찾아 부산국제외고의 후배가 돼 달라고 권유하며 신입생 유치에도 힘을 쏟았다. 딸은 “나 때문에 후배들이 이렇게 됐다”며 자책했다.

◇ “고입 동시실시에 따른 미달 우려”… 늦어도 6월초까지 전환신청 예정

부산국제외고가 일반고 전환을 추진한다. 개교 15년 만의 일이며, 전국 31개 외고 가운데 벌어진 첫 사례다. 학교는 정부의 ‘고입 동시실시’ 전개로 인해 학생들이 외고 지원을 주저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을 가장 큰 전환 이유로 꼽았다.

교육부는 앞서 지난해 11월 자율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외국어고·국제고) 등 ‘전기 입시고’(8~12월 입시)와 ‘후기 입시고’(12월~이듬해 2월 입시)인 일반고 입시 시기를 통합하는 내용의 방안을 발표했다. 고교교육 체제의 서열화를 완화하고 후기 일반고 지원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를 갖지만, 외고나 자사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질 경우 인기가 덜하거나 집에서 먼 일반고에 강제 배정될 수 있다보니 반발도 안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미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원 경쟁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재학 중인 학생들을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정부 정책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외고는 신입생 160명을 선발했고, 지원자는 169명이었다.

학교는 당장 2019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일반계 고교 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교육청 ‘특수목적고 지정 운영위원회’ 결정과 청문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후 교육부 동의를 얻어 고입 원서접수 기간(12월 10일) 3개월 이전에는 전환 공고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학교 관계자는 “늦어도 6월초에는 교육청에 전환 신청을 내야 계획 실행이 가능하다”며 “18일 전교 학부모회 대표 및 학교운영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고 현재는 학생, 학부모들과 적극 소통하며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부형 및 교육청 관계자 등이 포함된 TF를 가동해 재학생들의 학업 등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국제외고가 이대로 일반고로 전환되면 현재 1·2학년은 특목고, 신입생은 일반고를 다니는 과도기 상태가 2년간 이어진다. 학교 측은 이 기간에 외고와 일반고 교명을 함께 쓸 예정이다.

◇ “전환이 결정됐다니… 협의 없이 통보” 학부모들, 절차 문제제기

발표부터 추진까지, 일반고 전환 과정이 순식간에 이뤄지면서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큰 혼란이 빚어졌다. 학부모들은 마냥 두고 볼 수 없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학교 방침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비대위를 비롯한 학부모들은 일반고 전환을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다만 그 과정이 학교 측의 일방적 통보에 그치지 않고, 납득할 만한 절차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학부모는 “학교 측이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상대로 보호자와 협의 없이 통보를 했는데, 이는 곧 폭력”이라며 “뭐든 동원할 때마다 주체는 학생, 학부모라고 강조하던 학교였다”고 말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학교 측은 “전환은 이미 결정됐다”며 ‘굳히기’로 일관했다. 18일 대입설명회 참석 등의 일정으로 학교를 방문했던 학부모 대표와 운영위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려가 “전환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어 같은 날 강당에 소집된 전교생에게도 외고 타이틀을 접는다는 공지가 발표됐고, 관련 내용이 담긴 가정통신문이 배부됐다. 대다수 학부모들은 자녀의 전화 연락을 받거나, 이날 오후 “학부모 총회를 개최한다”는 학교 측의 ‘긴급 문자’를 통해 사실을 접했다.

비대위 소속 한 학부모는 “느닷없는 통보 후 지금껏 학교 측이 주최가 돼 이뤄진 공청회 등 의견수렴 기회는 없었다”며 “학부모들이 모이려고 하면 어떻게 알고 학교 측에서 연락이 와 함께 자리를 갖는 식”이었다고 밝혔다. 또 “이 같은 자리에서도 학교 측은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했다”면서 “학교 홍보가 필요하면 홍보에 참여할 것이고, 재정이 부담되면 인상되는 등록금도 감수하겠다고, 외고를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지만 ‘학부모 의견은 결정된 사안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관련해 학교 측은 기자에게 구성원들을 향해 재정적 문제를 거론한 적은 없다고 피력했지만, 일반고 전환과 관련해 각 가정에 보낸 가정통신문에는 “자체 수익금으로 운영하는 외고 형편상 정원 미달 시 경영이 부실해질 것”이란 내용 등이 적혀있다.

일반고 전환을 급하게 추진하지 말고 유예기간을 두자는 제안마저 거부한 학교 측에 대해 또 다른 학부모는 “급박한 추진의 배경에는 6월 교육감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1학교 2체제’를 맞닥뜨릴 학생들의 혼란도 걱정이다. 특목고와 일반고 학생이 한 학교 안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 위화감 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이 같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지만, 학교 측이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전한다.

학부모들은 학교와 소통이 안 되자 부산교육청에 잇따라 민원을 넣었다. 이에 교육청은 학교 측에 원만한 합의를 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학교가 내린 결정을 이행하는 데는 사실상 문제될 게 없다.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결정권은 학교 법인 이사회가 갖고 있으며, 학부모 동의가 필수적 법적 요건이 아닌 만큼 서류를 제출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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