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균의 현장보고] 17년만에 하는 엄마, 아빠의 결혼식

발달장애 부부의 늦깍이 결혼식

기사승인 2018-06-10 0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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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민석이의 눈으로 본 가족이야기 형식으로 기사를 재구성했습니다. 지체장애인 부부 이홍석(37·가명)씨와 정명숙(37·가명)씨는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이 아산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외부지원을 받아 진행한 발달장애모 꿈 지원 사업에 선정, 결혼 17년 만에 결혼식을 올립니다._편집자 주 


엄마는 내가 청개구리래. 말을 안 들어서 청개구리 같대. 시시하게 개구리가 뭐야. 멋진 것도 많은데. 난 엄마, 아빠, 할머니랑 살아. 누나는 건강하지 못해서 다른 곳에서 지내. 자주 못 보니까 다음번에 누나를 보러 가면 내 키가 이만큼 더 커졌다고 자랑할거야. 

아참, 내 소개가 늦었지? 난 민석이야. 내 꿈은 프로게이머가 되는 거야. 그러려면 게임을 많이 해야 하는데 PC방에 갈 돈이 없어. 엄마한테 졸라서 500원, 아빠한테도 500원을 받으면, 바로 PC방으로 달려가. 그래도 한 시간밖에 게임을 하지 못해. 집에 있는 컴퓨터는 너무 느려서 게임을 할 수가 없어. 

엄만 내가 게임하는 건 질색인데, 책을 보면 잘한다고 머릴 쓰다듬어줘. 엄마가 내 머릴 슥슥 문지르면 나도 모르게 잠이 와. 에잇, 기껏 책보려고 했는데, 엄마는 ‘청개구리야 일어나’라고 웃으면서 볼을 꼬집어. 아프진 않아도 으아아악 하고 뒹구르면 엄마는 웃어. 난 엄마가 웃는 게 좋아. 

아빠는 온종일 식당에서 일해. 일 하느라 집에 안 오는 날도 있어. 아빠가 일하러 가면 엄마랑 할머니만 집에 있어. 엄마는 친구가 많지 않아. 그래서 내가 집에 언제 올지 몰라서 집 근처만 한 시간, 두 시간을 걸어 다니면서 날 기다리나봐. 

난 임대아파트에 살아. 사람들이 그러는데 돈 없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래. 우리 집은 왜 돈이 없을까. 우리 집은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서 돈이 없는 거래. 기초생활수급, 임대아파트가 뭔지 난 아무리 들어도 잘 모르겠어. 근데 돈이 많으면 게임이 팡팡 되는 컴퓨터를 사달라고 할 텐데. 아참, 그러면 엄마가 또 청개구리야, 청개구리야 하겠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엄마와 아빠는 장애가 있대. 아빠는 지적장애가 있고, 엄마는 지체장애랑 지적장애 두 개 다 있대. 난 이게 뭔지 몰라. 엄마, 아빠는 있는데 나는 없어서 서운해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엄마가 말하면 잘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엄마가 말하는 게 알아듣기 어렵대. 장애가 있어서 그런 거래. 이상하다, 난 엄마가 청개구리야 하면 바로 알겠던데.  

엄마, 아빠는 고등학교에서 만났다고 해. 아빠가 엄마한테 사귀자 길래 엄마가 그러자고 했대. 아빠는 까까머리, 엄마는 단발머리였는데 서로 맘에 들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이 살았대. 혼인신고는 했는데 결혼식은 안 올렸다나. 그때 돈이 너무 없어서 나중에 하기로 했다고 할머니가 그랬어. 그리고 누나가 태어났는데, 몸이 약해서 엄마, 아빠 마음이 많이 아팠었대.

마음은 어떻게 아픈 건지 난 몰라. 쿡쿡 찌르게 아플까? 저번에 창민이랑 축구를 하다가 가슴에 공을 맞았을 때처럼 아플까? 누난 나만 보면 꼬맹이래. 누나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눈이 뜨거워져. 에잇, 난 남자니까 울지 말아야지. 나중에 프로게이머가 되서 돈을 많이 벌면 꼭 누나랑 같이 살거야. 

엄마는 결혼식을 하는 게 꿈이었대. 나중에 내가 돈을 많이 벌면 엄마 결혼식을 시켜줄거라고 하니까 엄마는 내 머릴 또 쓰다듬어줬어. 언제는 안 해도 된다고 그러고 또 다른 날은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거야. 근데 엄만 진짜로 결혼식을 하고 싶나봐. TV에서 보면 결혼식 할 때 사람들이 꽃도 주고 그러더라. 나도 엄마가 결혼식을 하면 꽃을 주려고 몇 달 전에 개나리랑 진달래를 한 움큼 꺾어왔는데 시들어 버리고 말았어. 


며칠 전에 복지관에서 엄마랑 아빠한테 결혼식을 해준다고 했어. 그날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는데, 사실은 엄마도 되게 기분이 좋았나봐. 콧노랠 막 불렀거든. 그날 난 일기장에 ‘꿈은 이뤄지는 건가 봐요’라고 썼어. 아차, 어쩌지! 개나리꽃은 이미 시들어서 할머니가 내다 버렸는데! 내가 시무룩해하니까 복지관 선생님이 나보고 화동을 하라고 하셨어. 화동이 뭐냐니까 선생님은 내가 꽃이 되는 거래. “선생님, 전 꽃이 아니라 민석인데요?”라고 하니까 복지관 사람들이 전부 웃었어. 엄마는 내 볼을 또 살짝 꼬집었지 뭐야. 

결혼식 날 난 누나랑 화동이 될 거야. 복지관 아줌마, 아저씨들도 결혼식 준비로 바쁜가봐. 축가를 하면서 율동도 한다고 매일 연습을 하셔. 노래도 2절까지 부르고 오른쪽, 왼쪽, 이렇게 춤 연습도 하셔. 엄마 결혼식에 연예인이 오면 진짜 멋있을 텐데. 

엄마, 아빠는 한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 여름방학에 친구들이 피서를 갖다왔다고 하면 난 할 말이 없어. 그래서 괜히 심통이 나. 저번에는 영석이가 바다에 다녀온 자랑을 해서 듣기 싫었어. 사실은 나도 엄마, 아빠, 할머니, 누나랑 바다에 가고 싶었는데. 

그런데 엄마는 결혼식을 하면 신혼여행을 갈 거래. 복지관에서는 여수와 통영으로 신혼여행을 보내준댔어. 나도 가고 싶다고 졸랐는데, 복지관 선생님이 신혼여행은 부부만 가야하는 거랬어. 피. 나도 가고 싶은데, 엄마가 웃으니까 이번만 참지 뭐. 엄마, 아빠 대신에 PC방 가게 용돈은 꼭 줘야해.

[김양균의 현장보고] 17년만에 하는 엄마, 아빠의 결혼식

우리 주변의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다

이홍석·정명숙 부부의 결혼식을 준비한 곳은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문동팔)이다. 현재 복지관은 발달장애모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제빵수업, 요리교실, 자기관리 프로그램, 독서치유 프로그램, 자녀와의 관계 향상을 위한 독서코칭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5일 서선경(26) 사회복지사로부터 이들 부부의 결혼식을 비롯해 장애 부부들이 처한 상황을 들어볼 수 있었다. 

서 사회복지사는 “발달장애모는 하고 싶은 활동이 많아도 몸이 불편해서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들은 ‘주변 체계’가 약한 경우가 많다. 사람들과의 친분 관계가 옅어 사실상 고립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사회가 장애인이 자립하기에 그리 원활한 여건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명숙씨와 같은 여성장애인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건 바로 자녀 양육에서다. 서 사회복지사는 “평생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식, 무시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습 등 보육 환경이 뒷받침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학업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는 것.  

서 사회복지사는 “우리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질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잖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주변과 단단한 관계, 즉 주변체계가 약하기 때문에 주거지에서 안전사고 등이 발생하면 장애인들은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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