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의료서비스 공급체계, “무너진다”

보장성 강화에 중·소 병의원 벌써부터 ‘휘청’… 해법은 ‘아직’

기사승인 2018-06-0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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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성 강화정책의 도입과 함께 1차 의원, 2차 병원, 3차 종합병원으로 구분하는 의료서비스 공급체계 혹은 전달체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제는 주장에 그치지 않고,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책은 아직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국보건행정학회(회장 박윤형)가 8일, ‘미래 보건의료제도 발전방안 모색’을 주제로 개최한 전기학술대회에서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국민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지역기반 1차 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이나 급성기질환 외래를 담당하며 질환의 중한 정도나 특수검사 혹은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경우 2차 병원 또는 3차 종합병원으로 진료를 의뢰하는 기본적인 의료서비스 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특히 선택진료비 폐지나 2·3인 상급병실료 급여화, 기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으로 인해 의료기관 간 가격적 차이가 크지 않아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등 전달체계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1, 2, 3차로 나뉜 의료전달체계 간의 기능과 역할이 혼재돼있다. 의원과 병원은 유사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상급종합병원은 전달체계 파괴의 주범으로 전락했다”면서 “전달체계 개편 없는 보장성 강화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김 교수의 진단에 전문가들은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영호 중소병원협회장은 “협회로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지방이나 중소병원의 경우 환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한탄이었다”면서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달체계 개편 합의문이 채택하지 못한 배경에는 외과계 의원의 반대도 있었지만 상급종합병원의 반대도 있었다”면서 연구와 교육, 중증질환 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덧붙였다.

이용균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는 “보장성 강화로 인해 의료 질향상, 안전강화, 통합간호간병서비스 등 의료기관의 비용증가 압박이 이어지는 반면 환자는 비용부담이 감소해 대형병원이나 수도권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내원환자들의 체감비용 감소에 따른 진료이용량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진료량 통제로 이어질 것”이라며 “의료의 질 향상, 적정인력, 환자안전 강화 등이 병행되며 의료기관은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정부 전달체계 개편방향과 환자 의료이용 행태변화는 여전히 ‘깜깜’

이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현행 전달체계가 유지되기는 어려우며 중소병의원의 혼란과 경영상 위기가 지금도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았다. 보장성 강화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전달체계 개편이 시급하다는 것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김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 개편 ▶의료기관 유형별 진료비 차등제 ▶지리적 균등배치 원칙 하 필수의료 책임병원 육성 ▶급성, 아급성, 요양 등으로 전문병원 육성 및 분화 ▶가치기반 보상 확대 ▶병상 공급에 대한 합리적 규제 ▶계획과 정책 연계한 의료인력 공급확대 ▶혁신을 위한 시범사업 추진 총 8가지 전달체계 개편전략을 제안했다.

경증질환, 외래진료가 의원과 경쟁하며 이뤄지고 있는 지금의 상급종합병원 수를 늘려 권역거점병원화해 중증진료와 연구기능을 강화하고 지역의료의 교육자이자 리더로 역할을 개편하는 한편, 의원과 병원 또한 급성과 아급성, 요양 등 기능을 중심으로 역할을 나눠 그에 맞는 진료비 차등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역별로 필수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의료기관 분포와 역할을 재분하고 적절한 의료기관이 운영될 수 있도록 인건비 등 재정지원도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환자가 1차 혹은 2차 의료기관을 거쳐 대형종합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인식개선 등도 이뤄져야한다고 했다.

현 의료서비스 공급체계, “무너진다”
그러나 이 같은 김윤 교수의 기능중심 의료전달체계 개편안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뤄졌다. 심지어 “백지에 의료전달체계의 이상향을 그린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며 현실을 고려할 때 실현하기 힘든 계획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중소병의원의 위기를 기정사실화하며 “가격적 차이가 크지 않다면 보다 신뢰감을 갖고 치료를 잘하는 병원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 때 공급자와 소비자의 행태를 감안한 전달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전향적인 개혁이 아닌 현실을 감안한 개선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판을 갈아엎는 것은 장기적 방안이다. 지금은 소비자 입장에서 뭘 잘하고 어디를 가야하는지를 투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며 자연스러운 의료기관 퇴출 및 전달체계 재편이 이뤄져야한다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히 답을 내놓는 이들은 없었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전달체계는 개념부터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며 “지역균형발전 방향이나 환자안전, 의료기관의 기능을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먼저 무한경쟁하는 구조는 일단 깨야할 것이라고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만 말했다.

이어 “의뢰회송, 병상수급, 지역거점병원 지정기준 개편, 만성질환관리 등 개별사안별로는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첨언하면서도 “‘소비자를 위한 전달체계는 무엇일까’가 중요한 관점일 듯하다. 그걸 위해 사회적으로 계속 논의해 최선의 방법을 찾고 하나하나 방향성을 갖고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정윤호 회장은 “피해 당사자를 설득할 수 있고,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출구전략이 없이는 지금의 논의는 공염불”이라며 “새로운 판을 짜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물꼬를 트는 것도 좋다. 하지만 상생이 가능한 지불제도, 전달체계가 마련돼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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